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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ㆍ중국인/박병석 전홍콩특파원의 「대륙기행」: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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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0세이하 95%가 “한 자녀”/응석받이 「독생자」로 고민/아들 중시 딸 잇단 수난… 사회문제로/과보호로 버릇없이 의타심만 키워
「응석받이 황제들」.
10여년전 중국이 하나낳기 운동을 법으로 정해 실시한 이후 태어난 어린이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인구 과잉으로 고심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지난 79년부터 비정하리 만큼 철저한 「한가정 한 자녀낳기」(일대부부 지생육일개해자) 운동을 전개해 왔으며 이후 태어난 「독생자」세대때문에 새로운 고민에 싸여 있다.
중국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40세 이하의 부부중 95%가량이 외동아이를 갖고 있다. 이 외동아이들은 과보호속에 자라나 의타심이강하고 버릇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인 생활속에 물건을 아껴쓸 줄 모른다.
중국에는 「4ㆍ2ㆍ1증후」라는 말이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외동아이 사랑에 눈먼 증조부모ㆍ조부모,한없이 관대한 부모등 6명이 한 아이에 매달려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소황제」들을 위해 부모들을 밥을 떠먹여주다가 투정을 부리면 식탁에 앉아 옛날 얘기를 해가면 밥을 먹이는가하면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아이가 할일도 부모가 나서는등 과보호를 하는 바람에 자기 중심적인 버릇없는 세대로 자라나고 있다.
이들 소황제의 부모들은 대부분 문화혁명(66∼76)이라는 재난 기간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자신들의 한 때문에 자녀만은 공부를 잘 시켜야겠다는 집념이 대단한 세대들이다.
따라서 「독생자」에 대한 투자열도 대단하다. 소득이 비교적 높은 가정은 부부수입의 3분의 1가량을,보통가정의 경우 약 절반을 아이에게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덕분에 영양상태가 좋아져 아이들의 평균신장과 체중이 늘어나는등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쓰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편 법제화된 한자녀 낳기 운동은 여아수난,나아가서는 모녀 수난사태를 야기시키는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인의 의식속에는 전종접대(대를 이어가야 한다),중남경녀(아들을 중시한다)라는 관념이 수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딸을 낳으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아예 죽여버리는가 하면 딸을 낳은 부인들은 시부모와 남편의 학대에 시달리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자오쯔양(조자양)이 총리시절인 82년 전인대(국회) 연설에서 『우리는 특별히 여아와 산모를 보호해야 한다. 사회 전체와 사법기관은 여자 영아살해와 산모에 대한 박해등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상당수 관리들,특히 남자는 곧 노동력으로 직결되는 농촌의 관리들은 남의 일이 아닌 이 여아영아살해를 눈감아 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족등 55개 소수 민족은 예외적으로 두 자녀까지 허용되지만 총인구의 94%를 차지하는 한족에게는 독생자 정책에 대한 예외를 인정치 않는 정책은 남아출생률 증가에 따른 남녀인구 구성비의 불균형을 낳고 있다.
이미 11억명을 넘어선 중구의 폭발적 인구증가 뒤에는 「추비일인,오증삼억」(한사람을 잘못 비판하는 바람에 3억명의 인구가 불어나 버렸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당국의 뼈아픈 실책이 있다.
60년 북경대총장 마인추(마인초)는 『신인구론』에서 인구억제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인구증가는 곧 생산증가와 비례하고 혁명과 생산이 인구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마오쩌둥(모택동)의 비판을 받고 숙청당했다.
지난 54년 인구가 6억명 수준이었으니 모의 그릇된 판단이 오늘의 중국에는 씻을 수 없는 부담과 고민을 안겨준 셈이다.PN JAD
PD 199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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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A01
BL 2775
GO 중앙칼럼
GI 권영빈
TI 「4ㆍ19」와 「5ㆍ16」사이에서… /권영빈(중앙칼럼)
TX 4ㆍ19 30돌이 지나가고 곧 29번째의 5ㆍ16을 맞게 된다. 민주화를 향한 개혁과 투쟁의 함성으로 기록되는 미완의 민주혁명과 억압과 권위주의의 상징체계로 대표되는 군사 쿠데타의 중간 시점에서 우리는 새삼 역사의 반복성에 소스라쳐 놀라고 그 반복성이 안겨주는 깊은 절망감에 좌절하게 된다.
4ㆍ19와 5ㆍ16,80년대의 봄과 5ㆍ17의 5공정권,6월항쟁 이후의 민주화 진통과 3당통합 이후의 구태재연 현상들을 보면서,왜 우리의 현대사는 민주화와 권위주의라는 두 극단을 왕래하는 시계추운동을 되풀이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역사란 정ㆍ반의 대립을 통해 합의 과정을 이루는 순환적 발전과정이라는 논리가 없는게 아니다. 그러나 그 역사이론으로 본다해도 정ㆍ반은 합을 향한 과정이지 정반의 대립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우리에게 있어 정반은 합을 향한 과정이 아니라 정반의 대결자체가 목표였고 아예 합의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4ㆍ19적 민주화 논리가 5ㆍ16적 권위주의 논리가 정반으로 맞서 때로는 4ㆍ19적 주장과 정신이 일시적 승리를 거두는가 하면,그다음 이어지는 다중과 집단의 지칠줄 모르는 시위와 농성의 염증속에서 다시금 「구국」을 앞세운 5ㆍ16적 권위체제로 되돌아 가고 있다.
4ㆍ19적 요소가 정치의 민주화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생적 욕구라는 민주화의 기본개념을 담고 있지만,다중과 집단에 의한 시위와 농성,데모만능의 부정적 측면,4ㆍ19속의 반 4ㆍ19적 요소가 또다른 유산으로 오늘도 우리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5ㆍ16적 요소가 불법적 정권탈취와 억압과 권위체제라는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 체계가 지닌 전체주의적 효율성과 「하면된다」는 식의 명령체계로 이룩한 경제성장이라는 괄목할 만한 업적때문에 긍정적 요소 역시 무시할 수 없게 우리속에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그 어둡고 억압된 30년의 생활에 시달려 왔음에도 우리가 아직껏 4ㆍ19적 요소와 5ㆍ16적 요소의 희비가 엇갈린 애증의 감정을 청산하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민주화 욕구의 다중ㆍ집단간의 갈등이 거세지면 다시 권위주의 체제를 갈망하고 권위주의 체제의 핍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다시 민주화 시대의 도래를 희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여전히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억압과 권위에 억눌려 지내다간 대학생 시위가 일어나길 고대하고 그 시위가 분열과 혼란으로 번지면 다시 이 나라를 구할 「백마타고 올 거인」을 기다린다.
적어도 3당통합이 있기전까지만 해도 날마다 터져나오는 분규와 집단시위에 대해 정부는 관망할 줄도 알았고 인내할줄도 알았으며 여론에 귀를 기울였고 공권력의 발동에 자제력을 보이기도 했다.
30년동안 세번째로 맞는 이번 민주화의 봄은 4ㆍ19의 봄과 80년의 봄과는 달라야 한다는 묵시적 기원으로 집단간의 욕구 자제와 한발씩의 양보를 촉구했으며 시위와 파업은 법의 테두리속에서 이뤄지기를 모두가 다짐하고 권유했다.
자제와 양보와 합법적 투쟁이 시민적 질서로 자리잡혀 가는 지난 3년여 민주화 훈련속에서 이대로라면 뭔가 우리에게도 민주화의 전망이 선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3당통합 이후의 지난 3개월을 보면 다시 5ㆍ16적 회귀를 예감케하는 우울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조짐의 하나는 정호용씨의 사퇴압력에서부터 대구서갑,진천­음성의 보궐선거를 거쳐 민자당내분,그리고 당장 눈앞에 진행중인 KBS 사태에 대한 조기 공권력의 투입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6공정부의 5ㆍ16적 회귀현상이다.
5ㆍ16적 회귀를 그나마 정당화 시켜주는 것은 4ㆍ19의 반 4ㆍ19적 측면이 여론의 불안심리로 확산되는 것이다. 격렬한 임금투쟁이 기업가의 투자의욕을 잃게 하고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국가경제가 흔들린다,노조파업으로 기업이 문을 닫고 지하철이 멈추고 전교조의 파동으로 공교육이 흔들린다,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사장을 사원이 반대하고 국민이 낸 시청료로 운영되고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을 사실상 중단한채 방송민주화를 외치고 있다,국기가 흔들리고 나라의 기강이 흔들린다,… 이런 현상이 「말탄 거인」과 권위주의 체제로의 향수심을 부추기고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보면 다시 이런 현상이 나타나려는 것 같다. 민자당 분쇄궐기대회가 대학가마다 진군의 나팔을 불어 젖히기 시작했고 울산의 노동현장이 다시금 붉은 깃발아래 전사를 불러모으고 있으며 강경대응 방침과 방송민주화 사수의 KBS 사태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이제 막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모든 권력이 사악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권력이 권력답기를 부추기고 국민이 힘없는 정치권력에 두려움을 느끼며 권력이 강해지기를 은연중 기대하게 될때,모든 권력은 사악한 권위체제로 둔갑할 수 있다.
장외투쟁으로 일관했던 전민련이 정치권내의 정당참여를 결정했을때 모두가 환영했던 까닭도,다중의 불법시위와 집단의 폭력성을 금기시 하는 경실련의 목소리가 이 사회에 맑고 곱게 퍼지는 까닭도 권력이 사악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고 정ㆍ반ㆍ합의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길고도 느린 민주화 작업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는 지혜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입지가 달라진 정권의 민주화 개혁의지가 퇴색되고 있는터에 강한 정권,힘센 정부만이 경제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 5ㆍ16적 여망이되살아나고 그런 시기에 그 여망을 부채질하는 4ㆍ19의 반 4ㆍ19적 측면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세번째 맞는 우리의 민주화 시대도 다시금 4ㆍ19와 5ㆍ16의 중간지점에서 끝날까봐 걱정이 아닐수 없다. 이처럼 비관적인 우려와 불안은 평생을 억압과 권위주의 체제밑에서 기죽어 살아온 한 좀팽이의 부질없는 기우로만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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