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민정신/뺑소니 택시에 치인 행인 방치 생명 위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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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나던차 15대나 병원수송거절 “범행차량 잡자”엔 “귀찮다” 외면/큰길막고 버스세워 겨우 후송
뺑소니 택시에 치여 쓰러진 환자의 병원수송을 지나가던 숭용차·택시 15대가 모두 거절,실종된 시민정신속에 응급치료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생명이 위독하다.
더구나 뺑소니 택시를 뒤따라가던 택시운전사는 승객의 추적요구에 『경찰서에 불려 다니고 싶지 않다』며 거부,뺑소니차를 눈앞에 두고 놓쳤다.
22일 오전5시쯤 서울화양동 네거리앞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던 김윤종씨(29·성남시단대동6093)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택시에 치여 머리·허리등을 크게 다쳤다.
사고택시는 곧바로 광장동쪽으로 달아났으며 뒤따라 서울××1214호 택시를 타고 가던 김종래군(20·식당종업원·전북부안군)등 청년3명이 이를 목격,30대 운전사에게 뺑소니 택시를 뒤쫓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운전사는 『경찰서에 불려 다니고 싶지않다』 『붙잡아봐야 골치만 아프다』며 거절하다 승객 김군등이 항의하자 『쫓아가려면 다른 차를 이용하라』며 강제하차시키고 가버렸다.
사고택시는 흰바탕에 황색줄무늬가 쳐진 수범택시로 보였으나 승객 김군등은 발을 동동 굴렀을뿐 추격할 수 없었다.
김군등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김씨를 병원으로 옮기면서 실종된 시민정신을 또다시 절감해야 했다.
10여분동안 승용차 3대,빈택시 12대를 붙잡고 김씨를 병원까지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나 한결같이 수송을 거절,그대로 지나쳐버렸다.
모두 『귀찮다』는 반응뿐이었다.
김군등은 할수없이 원동방씨(27·상업·서울신월동)등 행인4명의 도움을 받아 큰길을 가로막고 시내버스를 세워 피해자 김씨를 5백m쯤 떨어진 건국대부속 민중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피해자 김씨는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채 뇌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이병원 당직의사 조지훈씨(33)는 『머리등에 워낙강한 충격을 받아 중태』라고 말했다.
승객 김군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며 뺑소니차도 나쁘지만 이를 보고도 외면하는 택시나 교통사고 환자를 귀찮다고 버려두고 가는 승용차·빈택시들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고 메마른 세태에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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