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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미국 경제, 동네 병원이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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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미국 경제의 최대 '효자'는 병원=그동안 미국 병원은 낮은 효율성과 높은 비용,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런 보건의료산업이 없었다면 지금 미국 경제는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것이다. 병원, 제약, 의료기기,의료보험업 등 보건의료산업은 2001년 이후 모두 17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다른 민간분야의 일자리는 경제 호황에도 별로 늘지 않았다. 전후(戰後) 최고의 호황을 누린 주택건설업이 2001년 이후 90만개 신규 고용을 창출했을 뿐이며, IT산업에선 되레 11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제조공장들은 중국에 밀려 줄줄이 문을 닫고 있고 소매업도 위축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업률은 4.7%에 불과하다. 대서양 건너 프랑스(8.9%)와 독일(8.2%)의 절반 밖에 안 된다. 의료산업 덕분이다. 의료산업 부문이 없었다면 미국의 실업률은 현재보다 1~2%포인트 높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계산이다.

◆세계화 바람에 버팀목되는 '헬스 벨트'=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존스타운이라는 도시는 한때 철강 제련과 탄광업 등으로 콧노래를 부르던 곳이지만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1950년대 6만3000명이던 인구가 지금은 2만 3000명이다. 지금 이 도시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은 바로 콘마우 헬스 시스템이라는 의료기관이다. 모두 5000명이 여기에 소속돼 있어 주차돼 있는 차들 거의 대부분이 이곳 주차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클리블랜드도 그렇다. 몇 년 전 만해도 클리블랜드는 워너&스웨이지나 TRW같은 유명 제조업체가 있었지만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 빈자리를 2만9000명을 고용한 클리블랜드 병원와 또 다른 병원(2만1600명)이 차지했다.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포드가 내보내는 근로자 중 상당수를 의료기관에서 빨아들이고 있다. 2001년 이후 공공부분 일자리 3만 6000개가 없어진 노스캐롤라이나는 의료부분 일자리 6만 개가 늘면서 실업률이 낮아졌다.

세계화 바람 속에 제조업이 붕괴한 곳에서 보건의료산업이 급성장하며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북동쪽 메인주를 시작으로 남쪽으로 펜실베이니아 등을 거쳐 중서부지역과 남부지역 등 이런 전형적인 특성이 나타나는 곳을 현지 언론들은 '의료 벨트'(health belt)로 부르고 있다.

보건의료산업의 고속 성장은 소득이 늘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게 이유다. 첨단 의료 서비스에 기꺼히 돈을 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첨단 의료산업에 투자가 몰리는 등 선순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는 향후 10년간 줄기세포 연구에 30억 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지나친 쏠림현상' 우려도=이런 추세라면 향후 25년간 만들어지는 미국 일자리의 30~40%를 보건의료 분야가 맡게 된다. 현재 노동시장에서 12%인 의료분야 종사자 비율이 15~16%로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 분야에 지나치게 경제가 의존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당면한 문제는 바로 의료 분야가 바로 미국의 고질병인 쌍둥이 적자(재정 및 경상수지적자)에 적잖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은 연방예산의 4분의 1인 6000억 달러 이상을 보건의료 분야에 지출됐다. 높은 의료 보험 때문에 4700만 명이 의료 보험 혜택을 못 받고 있고, 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의료비 지원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의 요인 중 하나가 정부가 의료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해외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의료분야 IT에 대한 집중적 투자 등으로 의료분야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그럼에도 의료산업이 미국 경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하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케인즈가 살아 요즘 미국 경제를 들여다봤다면 '경기 불황일 때는 정부가 투자를 많이 해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던 말 대신 '보건의료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적었을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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