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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명 일자리 생기는데 "절대농지엔 공장 못 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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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2: '왕가뭄.바늘귀.별따기….'올 하반기 취업시장에 이런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월급 많고 대우 좋은 500여 개 주요 상장사들이'하반기 채용 계획이 없거나, 뽑아도 인원수를 줄이겠다'고 입 모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으로 장사도 시원찮은데 무작정 책상을 늘릴 순 없다는 것이다.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30대 대기업의 일자리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8만 개에서 2004년엔 67만 개로 쪼그라들었다. 사상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어선 취업 준비생들의 어깨도 갈수록 처지고 있다. 최근 '금남(禁男)'영역이었던 은행 텔러(창구직)에 남성들이 몰린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괜찮은 일자리'가 줄면서 중산층이 갈수록 고통받고 있다. 제대로 돈벌이가 되는 일터를 척척 얻어야 중산층이 두터워지지만 오히려 거꾸로인 것이다.

일자리 추락은 괜찮은 직종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은행.보험 같은 금융회사 직원은 97년 44만 명에서 현재 41만 명으로 줄었다. 공기업 직원도 같은 기간에 25만 명에서 22만 명으로 감소했다.

이런 모습은 점점 굳어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90년대 이후 연봉이 상위 30%와 하위 30%에 포함된 일자리는 크게 늘고, 중위권 일자리는 제자리 걸음인'U'자형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간병인.보육인 같은 '사회적 일자리'창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주역은 기업이다. 딜로이트 하나안진회계법인의 김경준 상무는 "투자할 돈이 많은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 놓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의 덫을 없애야 수도꼭지처럼 일자리가 쏟아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10대 그룹만 해도 현재 투자로 언제든 쓸 수 있는 돈이 145조원에 이르지만 곳간에서 나올 기미가 없다. 김경환 서강대(경제학) 교수는 "대표적으로 수도권 공장 규제 등을 중국 상하이 같은 수준으로 크게 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기업의 계열사 출자를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역시 기업투자를 막아 일자리 창출에 방해가 되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출총제에 묶여 투자하지 못하는 돈이 7조원에 이른다"며 "업종이 사양길에 접어든 대기업들은 생명공학 같은 첨단기업 출자를 통해 활로를 뚫어야 하는데 출총제가 막는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도 이런 지적을 수용해 9월말 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어느 정도의 대책을 내놓을지 미지수다.

앞으로 일자리 창출의 열쇠는 서비스업이 쥐고 있다. 한국의 일자리 구성을 보면 제조업은 이미 20% 아래로 떨어졌으며, 농업은 7~8% 수준이다. 결국 서비스업이 대부분의 고용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2% 수준으로 미국.일본.독일(68~70%)보다 뒤처진다.

정부는 지난해 "컨설팅.디자인.소프트웨어 등 8개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교육.의료 같은 서비스는 시장 빗장을 열고, 골프장 규제 등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조차 "단기 처방이고 종합적 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본부장은 "서비스업을 향락산업쯤으로 여기면 안 된다"며 "정부 재원으론 교육.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어려운 만큼 기업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면 일자리가 크게 늘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고현곤(팀장), 양영유.정철근(사회부문), 나현철.김준술.손해용.임장혁(경제부문), 장정훈(디지털뉴스부문), 변선구.최승식(사진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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