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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9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박헌영지지 명백히 선언/편집국 「세포회의」이후 정치생명 위기에
반 박헌영파는 나를 이우적 사람이라고 자기들편으로 알고 있을뿐 아니라 정태식등 해방일보 주류파들도 나를 이우적파로 보고 있었다. 물론 이우적과 나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다.
그가 43년에 출옥할때 나이 서른아홉살인데 아직 장가도 못간 상태라 나의 4촌처제를 그에게 소개시켜주어 결혼하게 해 주었다. 그는 나보다 열네살 위이지만 나의 손아래 동서였다.
그래서 그는 공석에서는 나를 박동무라 불러도 사적으로 만날때는 반드시 박선생이라고 불렀다.
공산당등의 3당합당문제에 있어서도 이우적은 나에게 『김일성에게 적대하면 장차 불리하니 잘알아서 하라』는 말뿐이지 꼭 자기를 따라오라고 강권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반 박헌영파들이 즉시 당대회를 개최해 합당을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당대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여 승리할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대회를 열수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에 당중앙을 곤경에 몰아넣고 결국 당을 파괴하기 위해서 였다.
우선 36만당원이라는 방대한 조직인 공산당이 전당대회를 열자면 5,6개월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특히 정판사위폐사건 등으로 당원이 피검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당조직을 전부 미군정앞에 노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도저히 전당대회를 열수가 없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같은 현실에서 대회개최를 고집한다는 것은 당을 송두리째 파괴하려는 반당행위였다.
반당파의 목소리는 컸지만 그들의 하부조직은 보잘것 없었다. 서울시당 산하의 각구역당중에서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곳은 전라도 출신의 신용우가 위원장을 하고있는 동대문구역당 뿐이었다.
영등포구역에서 구소현ㆍ변재철등이 장악하고 있는 몇개 공장의 세포와 경기도에서 내가 이정윤에게 추천한 정봉식이 담당하고 있는 소사의 몇개 공장 세포가 더 있었으나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정봉식은 일제때부터의 동지이며 독립동지회의 중요한 멤버였으나 그는 이정윤과의 관계를 끊지못하고 반당파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외의 도에는 경남의 몇개 세포가 동요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반당파들이 당중앙의 약점을 찔러 대회를 열자고 주장해도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될리 없었다.
결국 중앙위원회에서 당의 기본조직인 세포회의를 열어 반대파를 지지하는 세포가 과반수를 차지하면 현재 박헌영 중심의 중앙위원회는 해산하겠다고 결정하고 세포회의에서 결전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국의 각도ㆍ시ㆍ구역ㆍ군당 산하의 세포가 극비리에 회의를 열게 되었다. 우리 해방일보 세포회의도 열리게 되었다. 해방일보 세포는 편집국분세포ㆍ영업국분세포ㆍ공무국분세포의 3개 분세포로 나뉘어져 있었다.
먼저 정태식의 사회로 편집국세포회의가 시작되어 정세보고가 있은 다음 한사람씩 차례로 일어나 토론을 하고 마지막으로 어느쪽을 지지한다는 태도표명을 했다.
회의장은 천하를 판가름하는것 같이 긴장하며 숙연해졌다.
각자의 토론과 태도표명을 들으면서 차차 나의 차례가 가까워오니 모두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날 분세포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의 경향은 다 알려져 있었지만 나는 그때까지 어느편도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의견을 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그때의 주류와 반주류의 비율이 5대6으로 내가 만일 반주류편에 서게되면 5대7로 반주류편이 이기는 것이고 주류편에 찬성한다면 6대6,그야말로 결판의 역할을 떠맡는 듯한 입장이었다. 모두 침을 삼키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자리에서 나는 『지금 우리당이 탄압을 당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당내 분열을 초래하는 일부 당원들의 분파행동은 당원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할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중앙과 그의 노선을 지켜나갈것』이라고 태도를 명백히 밝혔다.
이것은 나의 운명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부터 나의 정치생명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정치생명 뿐 아니라 육체적 생명까지 남북양쪽에서 위협을 받는 지경이 됐다.
그러나 나의 심정은 명쾌했다.
이어 영업국분세포와 공무국분세포에서 박헌영동지의 중앙위원회를 지지한다고 결의했다는 연락이 왔다.
결과는 편집국의 반주류파 6명이 반당파로서 출당ㆍ제명처분을 당하게 되었다. 그후 해방일보 세포에서 나는 처음으로 부동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PN JAD
PD 19900418
PG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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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A03
BL 923
GO 취재일기
GI 김진국
TI 고성ㆍ야유로 막내린 내무위/김진국 정치부기자(취재일기)
TX 국회가 또 한번 절름발이 걸음을 걸었다.
내무위는 17일 네번에 걸친 비정상적 정회 끝에 유회됐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정회돼 회기를 연장시키지도,새로 소집할 합의도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더구나 「보궐선거부정실태파악소위」를 구성키로한 총무단 합의에 대해서도 민자당의원들은 『소관상위 생각이 중요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심지어 『그러려면 총무단이 내무위에 와서 하라』고 까지 기세를 올렸다.
자동유회에 이르기까지의 회의내용도 한심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행정부측의 무성의한 답변과 야당측의 핵심을 벗어나거나 정치공세 위주의 질문 아닌 성토.
안응모내무장관은 민자당의 김영삼 최고위원이 말한 「공작정치」에 관한 질문에 『나는 「공작정치」란 말을 신문에서 처음봤다』고 대답하는 등 『모른다』『관계없다』는 말로 일관해 야당측의 심기를 건드렸다.
평민당측도 술집 심양영업 단속과 관련해 최근 술집실태를 30분이상 코믹하게 늘어 놓거나 똑같은 내용의 질문을 의사진행 발언형식까지 빌려 3∼4명이 되풀이해 정작 이날 쟁점으로 부각시키려 했던 「공작정치」 문제는 몇마디 밖에 언급을 못했다.
민주계의원들은 김영삼최고위원이 소리높여 외쳐온 공작정치ㆍ도청ㆍ선거부정문제 등을 전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김최고위원의 「개혁」이란 말은 커녕 『경찰력으로 KBS를 24시간내 진압못하면 내무장관은 사퇴하라』고 외치고 심지어 『야당할때 그런소리 안해본줄 아느냐,「선수」끼리 이러지말자』며 야당측을 야유하는데 앞장섰다.
민자당의원들은 야당측 질문을 가로막고 위원장에게 「주의」를 주라고 촉구하는 야당의원에게 『주의 좋아하네』라며 소란을 일으키고는 일방적으로 정회,유회시켜 버렸다.
국방위 날치기 통과후 여론에 밀려 자성하겠다고 했던 민자당도,공작정치ㆍ선거부정을 따진다고 임시국회 소집을 외치던 평민당도 그 자리엔 없었다.
자정이 넘도록 불이켜진 의사당이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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