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아마복싱에「희망」이 영근다|속사포 고교주먹 박덕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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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작년이래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아마복싱에 희망의 새별이 떠오르고 있다.
1m65cm·54kg으로 다소 가냘파 보이지만 눈빛이 매서운 올해 만17세의 박덕규(경북체고3)가 바로 그 주인공.

<대학 일반강자들 눕혀>
박덕규는 지난14일 폐막된 아마복싱 국가대표후보 2차선발전 밴텀급 준준결승에서 87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이자 89 인도네시아 대통령 컵 금메달리스트인 강호 조인주(동국대)를 치열한 난타전 끝에 판정으로 제압, 대회 첫 파란을 일으키며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고교생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89 세계주니어선수권 동메달리스트 김명종(경희대)과의 결승에서는 불꽃투혼을 발휘, 열화 같은 소나기 펀치로 김에게 두 차례 다운을 뺏으며 우승해 복싱 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국교시절 육상을 하며 다져진 빠른 발놀림과 지구력, 속사포같이 터져 나오는 시원한 원투스트레이트, 지칠 줄 모르고 쉴새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투지만만한 힘, 거기에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승부근성은 김광선 문성길 이후 새로운 스타탄생을 갈망해 온 복싱 인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박의 경기를 지켜본 현 국가대표 김승미 수석코치는『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저돌적인 파워에 전율을 느낄 정도다. 스트레이트 또한 일품으로 유연성과 짧게 끊어 치는 기술만 보완하면 무서울 게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블도저식 공격이 특기>
또 대학·일반 팀의 감독들도『황소같이 밀어붙이는 힘은 마치 문성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박의 돌풍이 다소 침체 상태의 아마복싱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게 틀림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돌같이 단단하다고 해서 김광선의 별명「라이터 돌」을 이어받은 박덕규가 복싱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경북 감천 중 1년 때인 85년.
당시 감천고 복싱선수로 활약하던 형 영우(21·체육과학대 라이트미들급선수)가 부러워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 복싱 부에 발을 들여놓았다.
변청수(50)감독으로부터 착실히 기본 기를 지도 받은 박은 중3때인 87년 소년체전 라이트플라이급 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경북체고(교장 권영대·60)에 진학하던 88년에는 제12회 고 김명복 배에서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이듬해 고 김명복 배에서는 대회 첫날 손을 다치는 불운으로 2회전에서 격돌한 김명종에게 판정으로 패해 예선 탈락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곽귀근(3l)현 코치는 이때의 패배가 오히려 자만에 빠지기 쉬운 나이의 박에게 약으로 작용, 하루 6시간씩 피나는 훈련을 쌓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너무 일찍부터 승리의 도취 감에 젖어 연습을 게을리 하기보다 때로는 패배의 쓴맛도 보며 억세게 자라야 된다고 봅니다.』
박은 이런 엄한 훈련과정을 거치며 저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다운시킬수록 더욱 침착해지는 냉정함도 배웠다.
박은 또 자신의 거친 복싱스타일과는 정반대로 영리한 복싱을 구사하는 미국의 슈거 레이 레너드를 좋아해 항상 생각하는 복서가 되고자 애쓴다는 곽 코치의 귀띔이다.
아무튼 대학·일반선수까지 참가한 전국규모의 종합대회에서 첫 패권을 안은 박이 여세를 몰아 현 국가대표 황경섭(상무)마저 뉘고 북경 행 티킷을 따낼 지에 대해 벌써부터 복싱 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황경섭과 대결 주목>
『공격 때 커버 링이 내려오는 버릇만 고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곽 코치의 말에 박은 『변칙과 양 훅으로 경섭이 형을 잡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김승미 수석코치도『노련미와 패기의 한판대결로 좀처럼 승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접전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89주니어대표로 뽑혔을 때 받은 태극마크 달린 유니폼을 가장 즐겨 입는 박이 올해 새로운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유일한 고교생대표로 선발될지 오는 7월로 예정된 국가대표 최종평가전이 주목된다.
80년대이래 고교생으로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대표가 된 선수는 허영모 이해정 등 이 고작이다.
박은 경북 예천에서 농사짓는 박찬국씨(50)의 3남1녀중 차남이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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