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쉼 없이 나부끼는 바람처럼 … "평생 글 쓰며 내 존재 확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하고 싶을 때 하는 얘기, 만들고 싶을 때 만들어낸 얘기가 진짜라는 생각이 듭니다. 막 하고 싶어서 만든 얘기를 광에다 쌓아놓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곶감 빼주듯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건 진짜라서 참 맛이 좋을 겁니다(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의 작가의 말, 1995년).'

등단 8년 만의 문학상 수상이니 감격했을 만도 하다. 하나 감사의 뜻보다는, 이야기 들려주며 평생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한결 도드라진다. 다음의 구절이 있어 더 그러하다.

'소설다운 소설을 써보겠다는 순수한 의지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바래 없어졌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로 생존해야만 한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는 그저 맥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지요.'

'소설로 생존해야만 한다'는 대목이 턱, 걸린다. 그랬다. 구효서는 소설만으로 생존한 작가였다. 유독 상복 없는 작가로 불리면서도 구효서는 전업작가를 고집했다. 1987년 등단하고서 출판사에서 서너 해 일한 적 있었지만, 이후로 그는 오로지 글로써 밥을 벌었다. 여태 펴낸 소설책만 25권이다. 그리고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작가는, 지금은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강화도에서 열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57년 출생이지만 호적엔 한 해 뒤 올랐다. 돌도 안된 유아가 숱하게 죽던 시절이었다. 작가의 부모도 막둥이가 돌을 넘기는지 지켜봤다. 열 명의 자식 중 이미 넷을 잃은 아픔을 당신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뭍으로 나가는 다리도 없던 시절, 뭍을 밟아본 사람은 동네에서 없었다. 모두가 가난했기에 가난은 흠이 되지 않았다. 누구네 아이가 밤새 죽었다 하여 마을은 수군거리지 않았고, 애가 아프면 동네 만신(萬神)을 찾아 무턱대고 빌었다. 지금은 이런 일들을 고릿적 얘기로 치부하지만, 사실 먼 얘기도 남의 얘기도 아니었다.

수상작 '명두'는 작가의 어릴 적 경험이 묻어있는 소설이다. 밥 먹듯이 밥을 굶던 그때, 그의 고향 섬엔 유독 무녀가 많았다. '명두(明斗)'란 것도 그때 알았다. 갓난아기를 부러 죽인 뒤 수습한 유골을 명두라 한다. 그 명두를 품고 있으면 남다른 영험의 만신이 된다고 한다. 소설은 명두집이라 불리는 동네 만신의 평생을, 죽은 지 20년 되는 마을 어귀 굴참나무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때로는 섬뜩하고 때로는 아프다. 작가는 "30년 전만 해도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말했다.

소설의 모티브는 유아 살해다. 죽은 자식을 굴참나무 아래 몰래 묻은 어미에게 죄는 없었다. 죄가 있다면 가난이었다. 많은 아이가 병으로 죽거나 굶어 죽던 때,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사라져도 동네 어른들은 그 아이를 찾지 않았다. 공범의식 때문이었다. 너무 오래된 얘기 아닐까요, 작가에게 물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자식을 죽입니다. 옛날엔 가난 탓에 아기를 죽였고 요즘엔 갖가지 핑계를 대며 태아를 살해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소설은 오늘의 얘기일 수 있습니다."

마침 올해는 구효서가 소설가가 된 지 20년 되는 해다. 감회가 남달랐으리라. 지난 스무 해가, 고달팠던 글쓰기의 시간이 눈 앞을 스쳤으리라.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수상소감을 찾아봤다.

'여백에 주저앉아 잠시 시름 잊고 쉴 수 있게 내게 문학상이 주어졌나 보다. 고단한 몸을 다시 추슬러 모든 어둡고 좁고 긴 것들을 애면글면 헤쳐나가라고.'

처음 문학상을 받았던 11년 전에도 그는 비슷하게 적었다. 변하지 않은 게다. 소설 속 굴참나무처럼 거기 그 자리에 서있었던 게다. 소설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작가는 바람이라고 답했다. "바람이 나부끼면서 존재를 드러내듯이 자신은 쉼없이, 다만 소설을 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는 바람이 유난히 나부낀 해로 기억될 것이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굴참나무가 들려주는 인생 …'읽는 재미' 솔솔

황순원문학상 심사평

우리 소설이 분명 변화하고 있다는 의견을 나누면서 최종 심사를 시작했다. 매끈하게 조립된 소설, 인공미가 묻어나는 소설, 독자반응을 자로 잰 듯 계산하며 쓴 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대다수 작품에서 역사적 관심이라든가 시대고(時代苦)를 감지해낼 수 없는 점도 우리 소설의 변화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게 했다.

오랜 논의 끝에 후보작 열 편 가운에 다섯 편을 추려냈다.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 김중혁의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 김인숙의 '조동옥, 파비안느',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구효서의 '명두'등이다. 각자 독특한 소설미학을 지니고 있었다.

인물의 미세한 심리변화를 차분한 어조와 빈틈없는 문장으로 따라가고 있는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은 화자가 자기성찰을 통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준다. 작품이 상투적인 세태비판소설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화자의 이기적이고 오만한 삶의 자세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작가의 의도는 독자의 상식과 어울리지 못하는 결과를 빚어내고 말았다.

김중혁의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는 해수면 오차측정, 지도제작 등과 같은 전문가적 행위를 흥미있게 전달한 점이라든가 에스키모가 만든 나무지도라는 모티프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빚어낸 점 등에서 작가적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다. 결말을 혈족애 확인으로 급속하게 닫아 버리고 만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김인숙의 '조동옥, 파비안느'를 구성하고 있는 수령옹주와 그녀, 그리고 파비안의 이야기는 실제로 약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도 수령옹주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큰 비중을 두었으며 독자도 인상 깊게 들었는데 정작 제목은 '조동옥, 파비안느'로 잡혀 있다.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다이어트 과정과 음식물에 대한 정보의 과다한 제시가 작품 전체의 균형을 깨버리고 말았다.

구효서의 '명두'는 백오십 년 살았다가 이십 년 전에 죽은 굴참나무를 화자로 하여 작가적 상상력을 적극 발휘하면서 삶.죽음.운명.모성성 등의 문제를 얼마간 새롭게 보게 한 점, 오늘의 한국소설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인소설(異人小說)'을 만들어내어 소설 읽는 재미를 회복시켜 준 점이 근거가 되어 높게 평가될 수 있었다. 작중인물과 사건에 화자가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든지 아니면 반대로 최대한 자제했더라면 '명두'는 더 완전한 구조미를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심사위원=김치수.김원일.김인환.오정희.조남현(대표집필 조남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