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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포장마차 '어부의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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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리산의 밤이 쌀쌀해지니 그만큼 쓸쓸해집니다. 쌀쌀하고 쓸쓸함을 달래는데 포장마차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요. 포장마차의 주황색 불빛만 봐도 벌써 가슴이 훈훈해지니, 그 정겨운 유혹을 어찌 뿌리칠 수 있겠는지요. 노고단이 바로 보이는 전라남도 구례에도 포장마차가 있지요.

구례 버스터미널 옆 청란화원 바로 옆의 '어부의 집'. 이곳이 바로 나의 아지트입니다. 포장마차의 벽면에는 시집 등의 책들과 알 만한 시인.소설가.영화감독의 친필 사인이 함께 걸려 있지요. 어젯밤에는 초가을에 입산한 시인 박남준 형과 더불어 모처럼 취했습니다. 안주도 일품이지만, 주인 형님과 형수의 미담이 있어 더욱 술맛이 났지요.

서울에 살 때, 길에 쓰러진 태국인 노동자의 수술 보증을 섰다가 그만 쫄딱 망했답니다. 불법 체류자를 살려서 귀국까지 시켰지만 엄청난 수술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지요. 졸지에 빚쟁이가 되어 섬진강 변에 텐트를 치고 살다가 포장마차를 차린 것이지요. 지난 5년간 그 빚을 갚느라 고생을 했으나, 언제나 꽃집 옆의 환한 불빛 어부의 집입니다.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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