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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사고」옛모습 되찾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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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선조 왕실의 실록을 보관하던 오대산사고 복원공사가 활발히 진행, 옛모습을 되찾아 가고있다. 오대산사고는 조선시대 전국의 5개사고 가운데 최대규모로 2백83년전인 1606년에 건립됐으나 한일합방이후 일제가 1백59권의 사고본을 빼앗아가고 6·25때 건물이 소실될때까지 조선조 왕실역사가 서려있던곳.
강원도는 이같이 유서깊은 유적지의 원형을 재현, 전통문화재를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문화재관리국의 지원아래 88년부터 91년까지 4개년계획으로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4억5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오대산사고 복원사업은 불에타 없어진 사고 2채중 정면과 측면 각4칸에 32평크기의 2층형누각인 선원보각을 현재 완공했고 같은 형태로 40평규모의 실록각건립과 담장정비 공사는 내달안으로 착공할 예정이다.
조선 태조대왕부터 철종대왕때까지의 왕실역사를 담은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는 당초엔 춘추관·충주·성주·전주사고등 4개소가 있었다.
그러나 선조25년(서기1592년) 임진왜란때 전주를 제외한 3개사고는 소실되자 왕실은 춘추관과 오대산·태백산·마니산·묘향산사고등 5개사고를 다시 건립해 재인쇄한 전주사고본을 이들 5개사고에 분산 보관했다.
전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심산유곡에 세워진 사고중에서도 오대산사고는 사명대사가 3재 (물·불·바람)가 못들어올 명당이라고 오대산기슭 호령봉밑에다 터를 잡아 선조 39년(1606년)에 선원보각·실록등 2채의 사고와 수호사찰인 사고사를 짓고 수호군 60명, 승군 20명, 수직삼봉 2명을 배치해 사고를 지키도록 한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유서깊은 오대산사고는 1910년 한일합방후 일제가 이곳에 보관중이던 1백59권의 사고본을 빼내 동경제대 도서관으로 가져간뒤 그나마 1923년관동대지진때 소실돼 버린 비운을 맞았다.
그후 빈채로 남아있던 건물마저 6·25동란때 불에타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은 사고지는 63년1월 사적37으로 지정돼 보존돼 왔었다.
사찰측이 동란직후 사고지에 건립한 현존건물인 영감사원통전도 다른곳으로 옮기고 이자리에다 실록각을 짓게된다.
오대산사고 복원사업은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역사성이 큰 유적지임을 감안해, 각종 고증작업에 주력,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돼 있는 옛 사고사진을 토대로 주춧돌을 비롯한 건물흔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거쳐 최대한 원형재현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는 월정사에서 북쪽 상원사방면 4km지점에 위치한 사고복원공사가 내년하반기에 끝나면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인 조선실록을 모두 복사해다 이곳사고에 전시, 관광객등에게 공개할 방침이다. 【춘천=권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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