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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국왕이 미봉책 쓴다”발끈/전택원특파원 네팔민주화현장서 2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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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임정수립은 야와해 술책”/정부 신년사 내용따라 정국방향 결정될듯
13일 오후8시 국영 네팔TV방송이 긴급뉴스로 비렌드라국왕이 야당세력의 민주화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비렌드라국왕은 이날 네팔야당인 네팔의회당(NCP)의 가네시 만 싱당수와 회담,야당세력이 요구한 8개 조건 가운데 상당부분을 수용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그러나 이번 비렌드라국왕의 「양보」는 유혈사태를 빚은 네팔정국의 해결책이라기 보다 시간을 끌며 왕정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는 국왕의 미봉책이자 정략이라는 지적이 많아 카트만두의 분위기는 아직도 유동적이다.
비렌드라국왕이 이날 싱 당수를 단독면담한 것은 야당세력의 분리ㆍ와해를 노린것이라는 설명이다.
네팔에는 현재 의회인 판차야트 소속 왕당파 세력과 중도파인 싱의 NCP,그리고 7개 좌파연합 세력인 좌파연합전선 (ULF)및 기타 군소 좌파그룹등 3개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싱 당수는 NCP와 ULF등을 대표해 반왕투쟁을 계속해 오고 있다.
싱 당수는 네팔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왕정존속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인물이다.
비렌드라국왕이 다른 야당세력 지도자를 모두 제치고 싱만을 만난 것은 현재 3파정립 네팔정국에서 싱의 NCP를 판차야트 세력과 결속시킴으로써 왕정존속을 확보하고 NCP와 ULF를 분리시켜 좌파그룹을 소수화시키겠다는 정략으로 보인다.
비렌드라국왕은 소수 좌파가 약화되고 이들이 투쟁을 계속할 경우 무력타도할 것도 의중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네팔정국의 새로운 발전은 네팔 달력으로 정월 초하루인 14일 비렌드라국왕의 대국민 신년사 발표후 구체적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왕궁으로 가는 길에 탑승한 택시의 40대 운전사는 싱 당수를 『가난한 사람의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싱 당수가 국왕과의 회담이후 임시정부 구성을 밝히고 있어 이는 ULF등 좌파그룹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네팔은 국민소득 1백60달러의 아시아최빈국이다. 카트만두 시내에는 남루한 의복의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젊은이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네팔의 국민소득은 장관의 경우 1백달러 (7만원)수준,경찰 초임은 20달러(1만4천원)가 고작이다.
국민들은 아직도 50% 이상이 물물경제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비렌드라국왕은 미하버드대에서 수학하고 지난 30년간 제정일치의 정치구조에서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다.
이같은 네팔의 사정은 NCPㆍULF등 거의 모든 반왕정세력들의 깃발이 공산주의의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과 밀접히 연결되고 있다.
네팔은 지난 50년대부터 소련ㆍ중국ㆍ인도등지를 통해 많은 공산주의 엘리트들이 양성됐다.
그러나 네팔의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를 신봉해서가 아니라 네팔 민중을 최악의 상태에서 해방할 유일한 선택이라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네팔에서의 민주화는 앞으로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네팔 특유의 것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네팔 재야지도자 싱옹>/“다당제 기초…입헌군주제 꼭 실현”/고교때부터 독립운동…15년옥고치른 「철인」
『국민들이 목숨을 희생하면서 얻어낸 민주화인 만큼 꼭 진정한 다당제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다.』
네팔의 민주화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네팔의회당의 지도자 가네시 만 싱(75)옹이 13일 오후4시 비렌드라국왕과 첫회담을 갖기 직적인 오후 2시쯤 카트만두시 차트라바티가에 있는 그의 집에서 1시간 가량 한국특파원들과 회견을 가졌다.
싱옹은 곧 국왕과의 회담을 위해 떠났고 나머지는 그의 대변인인 카필라 슈레스타씨의 (35ㆍ네팔인권연맹 사무총장ㆍ전네팔사범대교수)가 대신했다.
―네팔민주화의 앞으로의 전망은.
『6개월전부터 다당제 민주주의를 실시토록 요구했으나 국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유혈사태까지 이르렀다. 모든 책임은 국왕에게 있으며 이제라도 판차야트를 해산하고 모든 정파로 구성되는 과도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앞으로 네팔이 지향할 정치 체제는.
『다당제에 기초한 입헌군주제다. 좌익계열의 마샤리티파는 입헌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극소속에 불과하다.』
―좌파연합전선과 의견대립이 있다는데.
『공산당도 단결없이 국왕의 절대권력을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현된 뒤에는 각자의 노선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느 정당이 정국을 주도할 것으로 보는가.
『네팔의회당은 수많은 민초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당원수도 50만명이나 된다. 앞으로의 총선결과를 지켜봐달라.』
네팔국민들이 「철인」이라 부르는 싱옹은 네팔민주주의를 위해 15년간 감옥에 갔던 재야인사로 고령에도 불구,민주운동의 선봉에 서왔다.
최근엔 지병인 신장병이 악화,수개월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국지원의 라나족에 대항하는 민족독립운동을 벌여 퇴학당했으며 40년엔 종신형을 받고 탈주,인도에서 대학을 다녔다.
50∼59년 네팔의회당이 연정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각료직을 맡았으며 60년 친위 쿠데타로 인도로 망명하기도 했다.
싱옹의 정치노선은 비폭력 평화주의로 이번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도 이를 강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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