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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없는 일가4명 “하늘나라로 이사”/전셋방 못구해 자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가난의 비애 자식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유서
10일 오전 9시10분쯤 서울 천호1동 32 황모씨(50·공무원)집 반지하 단칸방에 세든 엄승욱씨(40·부동산 중개업)일가족 4명이 전세값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비관,방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했다.
처음 발견한 이웃주민 박영숙씨(40·여)에 따르면 이날 오전 명성교회 집사인 엄씨의 부인 김순화씨(38)와 교인심방을 위해 만나기로 했으나 교회에 나오지 않아 집으로 찾아가 잠긴 안방문을 뜯고 들어가 보니 불을 피운 연탄화덕이 머리맡에 놓여있고 엄씨 부부와 아들 홍철군(10·C국교3),딸 지영양(8·C국교1)이 나란히 누운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는 것.
부인 김씨등은 현장에서 숨졌고 엄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1일 오전 1시쯤 숨졌다.<관련기사 17면>
방안 옷장에는 엄씨가 자신의 부모와 동생 앞으로 남긴 유서가 노트5장에 쓰여 있었고 봉투에는 가족들의 장례비용으로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1백만원이 들어 있었다.
부모에게 남긴 유서에서 엄씨는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내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르는 집세를 충당하지도 못하는 서민들의 비애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집문제 하나 해결못하는 못난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적어 놓았다.
엄씨부부는 4년동안 보증금50만원에 월세9만원으로 얻은 4평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아오다 3월초 집주인 황씨가 『집을 새로 지어야 하니 4월말까지 나가달라』고 요구하자 이사할 월셋방을 구하러 다녔으나 준비한 1백만원으로는 구하지 못해 고민해 왔다.
경찰조사결과 서울S고를 졸업한 엄씨는 10년전 결혼한뒤 전국구 김모 국회위원의 운전사롤 월 60만원을 받고 일해오다 그만두고 지난해 10월부터 경기도 부천시에서 친구가 하는 부동산 소개업을 도와줬으나 벌이가 시원치 않아 부인 김씨가 집에서 자수미싱을 해 생계를 꾸려 온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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