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원조로 동남아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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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국이 경제 원조 카드로 동남아를 공략하고 있다. 베이징(北京)은 도로.댐.철도 건설 같은 인프라 지원을 앞세워 필리핀.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에서 자원 확보와 함께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다.

◆ 동남아 인프라 지원에 주력=캄보디아 북부 스퉁 트렁 지역. 메콩강 지류를 건너는 다리 건설을 위해 수많은 인부와 기술진이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세우기 작업에 한창이다.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에서 라오스를 경유해 캄보디아 남쪽 항구 시아누크빌까지 이어지는 1900㎞ 도로공사의 일부다. 공사를 이끄는 기술진 대부분은 중국 상하이(上海) 건설그룹에서 파견됐다. 지난해 중국이 캄보디아에 약속한 4억 달러의 무상원조 중 상당액이 이 도로 건설에 투입됐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지가 중국의 동남아 지원 실태를 보도하면서 전한 내용이다. 지난해 봄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훈센 캄보디아 총리 간 회담 결과를 보면 중국이 지원한 4억 달러 중 3000만 달러는 캄보디아 국방부 청사 신축에, 6000만 달러는 마약 및 밀수 단속을 위한 경비정 구입에 사용된다.

지난달 필리핀 국가경제발전국의 로무로 네리 장관은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세계은행 등 대외 원조 담당 간부 100여 명과 오찬을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국이 자국 수출입은행을 통해 향후 3년간 20억 달러의 특별 차관을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4개 주를 연결할 철도 건설과 마닐라 상수도 개선사업에 투자될 자금이다. 참석자들은 그 얘기를 듣고 한동안 '멍'했다는 후문이다. 중국의 원조 규모가 세계은행과 ADB가 제시한 원조금액인 2억 달러의 10배에 달하는 액수였기 때문이다.

자원 부국 미얀마에서는 중국이 독주하고 있다. 이미 국가 핵심 도로와 댐 등 현재 건설 중인 인프라 대부분에 중국 기술진이 파견돼 있다. 현재는 미얀마 서부해안의 항구 건설공사에 주력하고 있다. 라오스에서는 중국이 이미 남북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건설해 줬다. ADB의 톰 크라우치 국장은 "동남아의 경제 원조 시장에 중국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으며 이는 개발 원조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 자원과 정치적 영향력 확보=캄보디아 정부는 최근 자국 근해 다섯 개 유전 중 한 곳에 대한 개발권을 중국에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전은 중국이 매년 7억~10억 달러어치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캄보디아 남부 해안의 시아누크빌 항구 이용권도 확보했다.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이 항구와 캄보디아 내륙 도로를 통해 중국으로 들여오기 위해서다. 군사적으로는 중국 해군이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목적도 있다. 12월 중국의 원 총리가 필리핀을 공식 방문하게 되면 베이징.마닐라 관계도 한층 긴밀해질 전망이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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