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등 33명 '미국 박사' 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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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학위를 받은 미국 소재 대학을 한 번도 가보지 않고 돈을 주고 형식적 논문만 제출해 엉터리 박사학위를 딴 대학교수.영어학원장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인천경찰청 수사과는 18일 이 같은 혐의로 전.현직 대학교수 세 명, 영어학원장 한 명, 사업가 세 명 등 모두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같은 혐의로 24명을 적발했으나 공소시효 5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입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중 현직교수 네 명에 대해서는 해당 대학에 통보하고 현재 해외 체류 중인 한 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키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과제 제출만으로 필요 학점을 이수하고 학위논문도 짜깁기.대리 작성 등의 방법으로 형식적인 논문을 제출한 뒤 논문심사 과정에서 브로커 등을 통해 1인당 200만~1000만원의 학위 취득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교수인 K씨의 경우 2003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P대학에 입학비 및 수업료 명목으로 1만 달러를 현금으로 건넨 뒤 2004년 3월 이 학교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이 대학으로부터 공학.경영학.문학.교육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처럼 관련 기관에 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한 퀴즈 수준의 형식적 텍스트 강의를 수강해 60학점을 이수하고 다른 논문들을 편집해 만든 논문으로 불과 3개월 만에 학위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들이 미국에 있는 대학에 직접 방문한 사례도 거의 없을뿐더러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을 영어로 쓰지 못하고 논문 내용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전.현직 교수들은 석사학위만으로는 대학교수로 임용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나머지 인물들은 장래에 강단에 서기 위해 또는 자기 과시용으로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 대학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입학 전형 요강을 확인한 뒤 학교 측에서 통보한 아시아 지역 담당자와 연락을 통해 학위 취득 절차를 논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대학은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일정 금액에 학위를 판매하는 '학위 남발 가공대학(Diploma Mill)'으로 규정한 학교로, 미국대학 인증기관인 CHEA에 등록돼 있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 대학외에 다른 미국 소재 대학에 대해 비슷한 사례를 수사하기 위해 제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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