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민노총 뜻대로 안 되니 야합이라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노사정이 지난 11일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대타협을 일궈냈다. 노동관계법 개정은 헌법보다 개정하기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대타협을 둘러싸고 '반쪽짜리 개혁'이니 '밀실야합'이니 하는 논란이 있어 안타깝다. 물론 이번 합의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기본권 신장, 불합리한 관행 개선,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제고 등 우리 노사관계를 선진화하는 합의가 이뤄진 걸 간과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했다. 직권중재제도는 국제노동기준에 어긋나고 위헌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면서 공공이익 보장 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필수 공익사업에 필수업무유지제도를 도입했고, 대체근로를 허용키로 했다. 대체근로는 대부분 국가에서 허용된다. 국제노동기준 등을 내세워 직권중재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대체근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번 합의가 취약근로계층 보호를 강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을 높인 점도 평가돼야 한다. 모든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는 기본근로조건을 서면 작성토록 의무화했다. 해고할 때도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 통보토록 했다. 이를 어긴 해고는 무효다. 일부에선 사용자 처벌 규정을 삭제하고 금전 보상을 허용한 데 대해 부당해고 남용을 우려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부당해고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번엔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하면서도, 부당해고 남용 방지를 위해 이행강제금 제도를 도입했다. 또 확정된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번 합의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10년간 시행이 미뤄져온 노조 전임자 급여 지원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다시 3년 유예된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노사 모두의 준비가 부족하고 시행 방법 등에 대해 노사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시행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복수노조제도를 내년부터 당장 시행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에 대한 국제적 관행은 노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노조 대표는 임금교섭도 하지만 작업장 안전점검 순시 등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일도 한다. 이 경우 임금을 주는 선진국도 있다.

최종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도 성실하고 진지한 대화를 해왔다. 선진화 방안 논의 과정에서 민주노총 입장이 반영돼 의견 일치를 본 사항도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걸 부정해선 곤란하다. 민주노총은 지난 6월 21일부터 9월 2일까지 23차례나 노.사.정 관련 회의에 참여해 함께 논의했다. 그런데도 노.경총 합의를 거부하고 '밀실야합'으로 매도하면서 총파업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려는 것은 민주사회에선 자제돼야 한다.

조성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