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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자본의 경계를 낮춘 휴머니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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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치를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즉 민중의 시각과 군주의 시각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노베르토 보비오의 말이라고 한다. 이를 경제에 끌어다 쓰면 '노동의 시각'과 '자본의 시각'으로 나눌 수 있겠다. 고(故) 정운영 선생의 마지막 이론서인 '자본주의 경제 산책'은 기본적으로 전자의 입장에 서있다. 그러나 적어도 선생의 글 속에선 노동과 자본, 또는 좌와 우의 경계가 그리 모나거나 거칠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선생의 일관적인 휴머니즘이 그 경계의 턱을 낮춰줬기 때문일까.

'비주류 경제학자'로 자처하는 선생은 이 책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이 놓치기 쉬운 논점들을 짚어낸다. 특히 세계화와 시장주의가 비판의 대상이다. 세계화가 마치 신앙처럼 통하는 시대임에도 세계화가 드리우고 있는 짙은 그늘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다. 현대의 '유일신'이 돼버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회의(懷疑)의 화살을 날린다. "시장의 선택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그 타당성이 입증된 가설이 아니다"는 한마디에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이 압축돼있다.

그렇다고 세계화나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하거나 이에 저항하자고 외치지는 않는다. 좌파의 말과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살기나 노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를 촉구한다. 또 세계화의 폭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로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예리한 시선을 던진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역학구조를 차분히 짚어주면서 한반도의 최대 변수는 미국이며, 그 미국이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자고 주장한다. 공허한 자주나 이상론적 통일을 외치는 얼치기 진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이다.

선생은 지난 세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봤다. 여기서 지식인이란 좌와 우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어느 쪽에 서든 허위의식과 우상숭배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책무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선생의 진보는 보수를 아우르는 여유가 있고, 보수에게도 공명이 가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열린 진보'라고나 할까. 따라서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선생의 말을 굳이 좌파에 대한 변호라고 볼 필요는 없다. 좌파든, 우파든 인간성으로 껴안으라는 휴머니스트의 경구로 해석하면 충분하다.

이는 마르크스가 활동했던 시절의 유럽의 경제상황, 1970년 대 이후의 한국경제, 세계화의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술을 관통하는 이 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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