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미래' 로 나가지 못한 한·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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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려운 회담이었다.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이란 지적도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북핵.동맹,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 하나하나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너무나 중대한 문제들이다. 문제의 성격상 한 차례 회담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50년 동맹의 관성과 한.미 지도자들은 갈등과 이견보다 공통점을 찾는 지혜를 발휘했다. 북핵 문제를 외교.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한 방위 공약은 확고하며, 한.미 FTA를 차질 없이 타결한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대통령들에 의해 확인된 공통점을 향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관해 많은 과제를 남겼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시위는 우리의 어려움을 배가시켰다. 발사 직후 공중에서 부러져 실패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하와이 근처까지 날아갔다면 미국인들은 스푸트니크 이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은 조만간 북한에 대한 제재를 발표할 예정이다. 대단히 화가 난 중국은 대북 유엔 결의안에 찬성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했다. 또 우익 지도자들뿐 아니라 보통 일본인도 북한을 군사적 위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를 제외하면 북한 주변 누구도 강경한 입장을 쉽게 바꿀 것 같지 않다. 주변국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고 또 우리와 같아야 될 필요도 없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관련국들과 다른 우리의 입장은 대북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일관된 햇볕정책이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위력을 보여야 할 때다. 우리 국민도, 국제사회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남한만큼 북한을 이해해주는 나라는 없다. 눈치 볼 것도 없다.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할 말을 하자. 북한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북한을 도우려 애쓰고 있는데, 당장 6자회담에 나와야 한다.

한.미동맹은 변화에 직면해 있다. 한.미 연합전력의 변화와 전작권의 전환은 불가피하다. 미국은 솔직해야 한다. 닉슨 독트린 이후 지상군 철수는 미국의 정권마다 고려하던 옵션이었다. 냉전 종결 직후 아버지 부시 정권은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에 입각해 주한미군의 3단계 철수를 추진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철수는 2단계에서 중단됐다. 현 부시 정권은 해외주둔 미군 재편의 일환으로 중무장한 냉전형 부대인 주한미군의 재편을 추진한다. 그러나 재편의 청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도 지상군은 대부분 철수하고 해.공군 중심으로 지원한다는 EASI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본다. 전작권 논의에서도 미국은 공군에만 관심이 있고 지상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지상군이 철수하는 상황에서 전작권과 연합전력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문제는 북핵 문제가 클라이맥스인 시점에서 한.미 연합전력이 약화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연합전력이 차질 없이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동 전작권을 여하히 마련할 것인지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우리가 추진하는 병렬식 전작권의 사례가 미.일동맹이다. 그러나 최근 미.일동맹은 각군의 사령부기능을 같은 기지에 두고 지휘와 정보의 일체화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이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서두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전작권 전환은 미래동맹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고 그런 동맹이 왜 필요한지에 관한 국민적 설득과 컨센서스를 마련하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첨단 경쟁력을 공유하는 한.미 양국이 북핵에 발목을 잡혀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 이슈를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북핵 도전을 극복하고 미래동맹을 구축할 수 있을 때 대통령들이 지적한 '강력하고 긴요한' 한.미관계가 다음 반세기에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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