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피한 뭉칫돈 숨어드는 온상(지하경제: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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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나친 정부규제도 불법조장에 한몫/어설픈 정책은 오히려 확산을 조장
작년말 향락ㆍ과소비 조장업체로 적발된 N상사는 골프용품을 수입ㆍ판매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해외에 살고 있는 친척등과 짜고 수입가격과 국내판매 가격을 낮추어 신고하는 방법으로 매출액을 조작,세금을 빼먹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식들 명의의 부동산을 사두었지만 이에 따른 증여세도 내지 않았었음은 물론이다.
서울시내 D음식점은 단체손님이 많이 드는 곳인데 신고내용이 부실해 세무서의 주목을 받았다. 오랫동안 세무직원이 나가 주변의 관광버스,주차실태를 파악,추적한 결과 여행사 단체손님에 대한 매출을 빼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병중인 노모와 친척 명의로 여관을 위장 운영,소득을 분산시켰고 음식점은 여동생과 공동으로 사들인 것으로 신고하고 여동생의 매입자금 출처를 대기 위해 은행의 대출증명원까지 세무서에 제출 했지만 이는 대출을 받고 증명원을 발급 받은 당일 되갚은 형식적 대출에 불과했다. 물론 증여세를 물지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지하경제는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면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게 마련이다.
지하경제가 자랄수 있는 토양으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은 세금과 규제다.
세금문제는 지하경제 생성에 있어 제1의 유인이 되고 있다.
세금을 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하는 원인으로는 대체로 다음 여섯가지가 지적된다.
첫째 국민들이 세법을 얼마나 공정하다고 여기는지,둘째 세금을 거두고 쓰는 정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셋째 국민의 종교적ㆍ문화적 특성,넷째 탈세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어느 정도인지, 다섯째 탈세가 어느정도 용이한지,여섯째 탈세에 따른 이득이 얼마나 큰지 등이 그것이다.
부동산과 증권시장에서 얼굴없는 뭉칫돈들이 떠돌아 다니며 떼돈을 챙기고 더욱이 그것도 개발정보를 미리 빼낸다든지 내부정보를 이용해 이뤄지는 일을 허다하게 보면서 세금을 제대로 내고 싶은 생각이 들리 없다. 열심히 일해서 번 소득에 대한 실효세율이 13.5%나 되지만 토지에 대한 것은 0.03%에 불과하고 증권거래로 생긴 차익에 대한 세금은 아예 매겨지지도 않는다.
그런가하면 기업에는 기밀비다,교제비다 해서 드러내고싶지 않은 목적에 돈을 쓸 수 있는 창구도 열려있고 정부는 조세 감면규제법을 통해 특정기업ㆍ특정산업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제도적 불균형도 큰데 가진 사람들이 그 정도로 만족할 리 만무하다.
세법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경제규모가 커지고 거래와 업무의 내용이 복잡해 질수록 오히려 세금회피의 길은 더욱 다양해진다. 전문가를 동원해 합법적 영역에서 빠져 나갈 방도를 찾고 로비를 통해 그 구멍을 더욱 늘리며 한발 더 나아가 뇌물수수 등을 통해 아예 탈세를 모색키도 한다.
요즘의 경제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탈세보다도 완전히 불법적이라고 할수는 없는 납세회피,이른바 도세다. 이 영역이 「누구나 하고 있고 이는 지혜를 짜낸 노력에 대한 보수」로 취급될 때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폐해는 보다 심각하다.
지하경제의 생성을 촉진 시키는 또 하나의 주요한 원인은 정부 각종 통제나 규제다. 마약거래ㆍ매춘ㆍ도박 등은 행위자체가 아예 불법이다.
그렇다고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지하경제의 영역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철저한 단속과 국민적 감시를 통해 치유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경제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할 부분까지 틀어쥐고 통제하는 것은 줄여야 한다.
쓸데없이 많은 인허가사항,번잡하기 짝이 없는 행정절차,상품시장에 대한 과다한 개입 등이 모두 지하 경제를 키우는 온상이 되고 있다. 여기에 예산을 다루고 세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한 부적절한 봉급 수준은 이를 더욱 은밀히 조장한다.
지하경제는 공공부문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시장경제가 아닌 한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지하경제』의 저자 댄 볼리는 정부 지출이 요즘처럼 비효율적이며 지하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병근인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행정기관이 지하경제와 진지하게 대결하지 못하고,또한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법을 제정치 못하며 지하경제가 점차로 사회에 침투해 일반적으로 용인될때 지하경제는 더욱 발전한다고 지적한다. 토지공개념이 종이 호랑이로 바뀌고 금융실명제가 「유보」된 상황에서 우리의 지하경제는 또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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