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모텔 외부 치장물 단속 '공염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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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0일 부산 사상구 감전동 주택가에 있는 A러브호텔의 주차장 출입구에는 차량번호판 가리개가 설치돼 있고, 건물에는 만국기.오색천이 요란하게 나부끼고 있다. 해운대와 부산진구 등 도심에서 주차장 입구에 가리개가 없는 러브호텔을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다. 부산시가 러브호텔 외부 치장물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 지침을 내린지 3개월이 지났으나 일선 구군은 사실상 단속을 하지 않고있다. 법적 규제가 없는 행정 지침만으로는 단속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속 시행=부산시는 지난 7월 초 '러브호텔에 대한 입지 규제와 외관 개선안'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러브호텔이 주택가와 학교 인근에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주거.교육환경을 침해한다는 주민들의 불만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는 신규 러브호텔에 대해서는 조례 개정을 통해 허가를 규제키로 하는 한편 기존 러브호텔에 대해서는 행정지침안을 만들어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시는 이에 따라 기존 러브호텔의 성곽.첨탑.원뿔형 지붕 등의 건축물 형태는 철거를 권장하고 네온사인 등 광고는 사용제한 조치를 하기로 했다.

또 주차장 출입구 가리개.만국기.오색천.현수막 등의 외부치장물은 시.구.군 합동으로 단속에 나섰다.

부산참여자치 시민연대에 따르면 부산지역에는 3백42개(객실 6천8백40개)의 러브호텔이 영업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부 치장물 실태=구서동.청룡동.서동.부곡동 일대 러브호텔 상당수는 주차장 부지에 쇠파이프를 세워 그물망이나 삼각뿔 모양의 지붕을 덮고 차량 번호판을 가리기 위한 가리개를 만들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사하구.북구.남구.동래구 등 주택가에 들어선 러브호텔들도 대부분 주차장 가리개와 네온사인 등 러브호텔 특유의 외부 치장물을 설치해 놓고 있다. 외부 치장물 설치는 최근 들어 러브호텔간에 영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민들은 "만국기와 오색천이 휘날리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러브호텔이 주택가에 있으면 유흥가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문제점=외부 치장물을 규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어 실질적인 단속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행정당국은 단속보다는 러브호텔 업주들에게 자율 개선을 권장하고 있다.

S구청 관계자는 "러브호텔 시설점검을 할 조례 등 법적 근거가 없어 적극적인 단속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업주들에게 '개선해달라'고 요청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단속 시행 3개월이 넘도록 행정당국의 외부 치장물 단속실적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법적 근거 없이 단속에 나설 경우 러브호텔 업주와 마찰이 불가피해 단속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막상 시행에 들어갔지만 뚜렷한 실적이 없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관종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 김해시 조례제정 효율감시

◆모범 규제 사례=김해시는 지난 2월 러브호텔의 변칙적인 운영을 막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시민 정서를 해치는 만국기·현수막·오색천·화려한 야간조명·주차장 가리개 설치 등을 감시할 수 있는 ‘숙박업소 지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김해시는 이 조례에 따라 시민감시단을 만들어 감시활동을 펴고 있다.

부산참여자치 시민연대 강석권 부장은 “행정지침만의 지도·단속에는 한계가 있다”며 “단속의 실효성이 없을 경우 부산시에도 김해시와 같은 조례를 제정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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