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뚫은 「정치적 외교」/김영삼최고위원 방소 8일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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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르바초프면담 최대 수확/북한개방 설득ㆍ경협범위등이 숙제
한국과 소련 양국간 관계개선을 위해 지난 20일부터 8일간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방소단은 양국 외교관계 수립을 앞당기는 분위기 조성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측이 당초 목표로 했던 국교수립은 소련측이 계속 정경분리를 고집해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IMEMO와의 공동성명에서 「양국간 공식적 정부관계의 수립이 바람직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함으로써 정부간 접촉및 교섭의 발판을 마련했다.
양국 집권당인 민자당과 소 공산당 사이에 교류협력관계를 약속한 것이라든지 과학기술처장관 회담,문화장관 접촉,서울특별시와 모스크바시간의 자매결연 등에 있어서 노력키로 의견일치를 본 것은 정당외교의 차원을 넘는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던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되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분신이며 오른팔 격인 야코블레프정치국원이 직접 한국 방소단 대표들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 등은 미수교국간 대화라는 점에서 모스크바에서는 큰 평가를 내리고 있다.
소련측은 북한을 의식해 김최고위원이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엔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사실을 공개하지 않도록 했지만 소련을 떠난 후는 이를 밝힐 수 있도록 양해한 것은 한소간의 관계를 점차 공식화해 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소간의 관계정상화까지에는 양측간의 시각차이를 먼저 조정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소련측은 계속 양국수교 전에도 경제협력과 교류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이른바 정경분리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고 한국측은 경제협력과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도 양국수교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정경일치를 주장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소련측이 정경분리를 고집하는 배경에는 북한이라는 동맹국을 의식해야 되고 한국에 소련을 개방하는 「조건」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측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동구에서 화해와 개방을 가져왔듯이 한반도에도 적용해 줄 것을 주장했다.
두 정부간 미수교 상태에서의 관계를 청산하고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해야만 경제협력및 교류관계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소단이 소련측과의 끈질긴 협의과정에서 소련측에 그들이 주장하고 노리는 한국과의 경제협력과 교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치적인 관계의 진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소련측에 분명히 인식시킨 것은 큰 성과다.
아무튼 실력자 야코블레프정치국원의 입에서 『두 나라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은 없다』는 말을 끌어낸 것은 획기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문제는 정당간의 비공식관계를 정부간 공식관계로 격상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한의 존재를 소련측이 어떻게 설득해 나가며 우리측은 소련측이 요구하는 경제협력을 어느 범위까지 확대시켜 나가느냐는 문제인 것 같다.
양측은 일단 현재 영사처 관계를 연내에 대사급 대표부 관계로 격상시키는 데 우선 합의를 보고 있다.
이는 정식수교로 한걸음 전진한 단계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방소단은 대소 관계정상화의 공을 경쟁하는 김영삼최고위원과 박철언장관간의 불협화를 노출시키는등 문제점도 적지않게 드러냈다.
소련측은 이같은 우리측의 2원적인 대소 교섭양태를 십분 활용하려는 느낌도 주었다.
정통외교를 해야 하는 외무부의 입장에서도 김최고위원 일행의 활동이 그렇게 고마운 것은 아니다.
정당외교의 차원이 따로 있고 정부간 교섭은 또다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김최고위원은 그 「정치성의 홍보」에,박장관은 「북방외교의 독점」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외교섭의 현장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행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모스크바=이규진특파원】
◎한­소수교에 장애물은 없다/김영삼위원 모스크바 기자회견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은 26일 오후 방소일정을 마감하면서 수행기자들과 회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소련방문으로 인해 국교수립 전망이 밝아진 것인가.
『국교정상화문제는 귀국 후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양국이 급속히 관계를 진전시킬 의지를 갖고 있다면 보다 구체적인 것이 나타나야 할 것 아닌가.
『2∼3년 전만 해도 한소관계는 사실상 적대관계였다. 그러나 작년 6월 내가 소련을 방문함으로써 한소관계는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번 방문으로 한시대의 역사의 장을 바꿔놓게 되었다. 현재 한소양국 국민 대다수는 한소간의 국교수립을 원하고 있다. 결국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야코블레프정치국원,프리마코프연방의회의장 등 소련지도자들과 가진 단독요담 내용을 밝힐 수 없는가.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났는지 여부도 분명히 해달라.
『야코블레프ㆍ프리마코프와 단독회담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은 미수교 상태에서 외교관례상 밝히지 않겠다.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 여부는 만났다는 보도도 있고 만나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는데 둘 중 하나다.』
­공동성명을 보면 양국 정부레벨의 수교교섭이 곧 있을 것처럼 되어 있는데….
『큰 장애 요인은 없다. 영사관계를 실질적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대표부 설치를 말하는데 과연 국교정상화에 앞서 그런 중간 단계가 필요한지 앞으로 검토해 보겠다.』
◎한ㆍ소 공동성명〈요지〉
한소 양국은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한소간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공동인식을 갖게 되었다. 일련의 회담결과는 한소교류를 급속하게 하여 양국간의 공식적인 정부관계를 사실상 수립하는 단계를 가져오게 했다.
한소 양국은 정부ㆍ여당으로서의 이해을 증진시키기 위해 민자당과 소련공산당간의 교류협력관계를 수립키로 했다.
또 남북한 소련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의한 6개국 의원협의체의 설립에 수단ㆍ과정이 될 한소의회간의 의원교류를 실현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키로 했다.
양국은 과학기술분야 협력을 위해 과학기술장관 사이,그리고 소련과학아카데미와 한국의 과학기술원 사이에 정례접촉을 가져 과학기술 정보와 학자들의 교류를 촉진키로 했다.
양국은 문화교류를 위해 한국의 문화부와 소련의 문화부,그리고 대외친선협의회간에 공식접촉을 갖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관계를 위해 서울특별시와 모스크바시간에 자매결연을 하기로 했다.
◇합의사항
①양국은 공식적 정부관계의 수립이 바람직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국교정상화를 앞당기기 위해 필요한 협의ㆍ교섭,그리고 기타의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
②한소관계는 각자가 고유의 개발모델을 선택하고 상대방의 국내문제에 간섭치 않고 무력을 사용치 않는다는 주권 존중의 보편타당 원칙에 입각돼야 한다.
③한소간의 관계는 제3국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된다.
④현재의 상황전개는 한소간의 통상및 경제협력의 급속한 발전에 좋은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쌍방은 경제교류 관계를 확실한 법적 관계위에 세우고 상대방의 문제점과 가능성에 대한 상호이해를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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