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공지영씨가 기증한 애장품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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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43.사진)씨가 '위.아.자 나눔장터(weaja.joins.com)'에 애장품을 내놓았다. 기증품은 23일 중앙일보미디어네트워크(JMN)와 아름다운가게가 여는 나눔장터에서 경매돼 수익금은 빈곤층 아이들을 돕는 '위 스타트' 운동에 기부된다.

공씨가 내놓은 소장품은 사연이 길다. 사형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한창 사형수를 면회하고 다니던 이태 전, 작가는 한 사형수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가로 13㎝.세로 18㎝ 크기의 비누상자처럼 생긴 종이상자였다. 상자 안엔 지우개로 만든 예수의 얼굴상(사진(右))이 들어 있었다. 지우개 16개가 차곡차곡 누워 있고, 예수의 얼굴 윤곽을 음각(陰刻)한 것이었다. 파내지 않은 부분은 검은색 사인펜으로 여러 번 덧칠돼 있었다. 오랜 세월 매만지고 다듬어 만든 이의 정성이 배어났다.

작가는 사형수가 예수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교도관에게 물었다. 사형수들이 틈틈이 젓가락 같은 걸 이용해 조각하고, 이렇게 만든 작품을 자원봉사자들에게 선물로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수상을 건넨 사형수는 1m75㎝ 정도의 키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는 긴 편이었다. 어떤 죄를 지었나 알아봤더니, 10년 전 세상을 흔들었던 조직폭력배 '막가파'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이었다. 그때는 20대 초반이었지만 지금은 서른 줄에 들어섰다.

작가는 사형수와 함께 지낸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 소설이 지난해 5월 출간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현재 소설은 53만 부 이상 팔려 2년째 문학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예수상을 준 그 사형수의 용모가 고스란히 소설 속 주인공의 용모가 됐다.

"세상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사건의 장본인이라지만 직접 만나보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어요. 순한 사람이 어쩌다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혼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소설을 쓰게 된 동기라면, 아니 소설을 써야만 하겠다고 작정하게 된 건 바로 그 선량한 얼굴 때문일 거예요."

예수상의 원가라고 해봤자 지우개 16개 값이 전부일 터이다. 나눔장터 경매에 오를 예수상이 얼마에 팔렸으면 좋겠느냐고 작가에게 물었다.

"지금 교도소에는 한푼의 영치금도 없이 사는 사람이 1000명이고, 한 해 1만 원 이하의 영치금으로 사는 사람이 또 1000명이나 돼요. 얼마에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교도소에서도 돈이 없어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에게 1년에 1만원씩이라도 넣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사갔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나눔장터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까요?"

소설은 영화로 제작됐고, 마침 오늘(14일) 개봉한다. 배우 강동원씨가 사형수 역할을 맡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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