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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수렁 빠진 지방건설 살릴 방법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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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광주광역시에서 일반건설업 면허가 있는 건설업체는 지난해 말에는 160여 개사였다. 이 가운데 35개사가 올 상반기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절반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갔다고 한다. 대한건설협회 광주시회 강영순 사무처장은 "얼마나 일이 없으면 근거지까지 옮기겠느냐"며 "지방건설업체들의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아 있는 회사도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120여 업체 중 42개사는 올 상반기에 공사를 한 건도 따지 못했다.

요즘 지방건설사들이 수렁에 빠졌다. "일감이 없어 굶어 죽을 판"이라는 아우성에 "미분양이 회사 잡는다"는 하소연도 잇따른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침체국면이 올 들어 급속히 빨라지면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에서는 건설사들이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인위적인 부양은 아니더라도 공사 참여 폭의 확대 등을 정부가 마련해 줘야 한다"고 제시한다.

◆일거리 급감에 휘청=지방업체들이 수도권 건설업체보다 어려움을 더 많이 겪는 건 사실이다. 건설협회 조사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지방업체당 공사수주액은 17억2000만원으로 서울 업체(124억6000만원)보다 크게 떨어진다. 서울은 2002년 이후 업체당 수주액이 꾸준히 늘었으나 지방업체 공사는 줄어들고 있다.

업체가 난립했다는 지적도 있으나 지난해보다 경쟁 환경이 나빠진 게 없다. 지난해 8월 말 현재 일반건설업 면허를 가진 지방업체가 9136개였으나 올 8월 말에는 9104개로 되레 줄었다.

결국 지방업체들이 좌초 위기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일감 부족이다. 공공 공사는 물량 자체가 줄었고 민간 공사는 서울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린다. 부산 건설시장의 예를 들어보자.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등)은 120건이다. 이 가운데 부산의 건설업체가 시공하는 현장은 두 곳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서울 등 외지업체 몫이다(건협 부산시회 자료). 자금동원 능력이나 브랜드파워가 뒤지는 구도에서 수도권 대형업체와의 경쟁에서는 이길 수가 없다. 이 때문인지 올 상반기 부산 일반건설업체 가운데 53곳이 폐업해 지난 한 해 동안(52개사)의 수치를 넘었다.

공공 공사 물량 감소는 눈에 띈다. 전국 9000여 일반건설업체가 올 들어 7월 말까지 수주한 관급공사는 1조6428억원어치로 2년 전(2조875억원)보다 크게 줄었다.

◆주택은 미분양이 발목 잡아=업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미분양과 입주율. 지난 6월 말 부산 정관지구에서 1차분 7415가구를 분양한 7개 업체들은 계약률에 대해 '쉬쉬'한다. 업계 얘기를 종합해보면 계약률은 평균 10% 정도다. 지난 6일 접수한 광주광역시 수완지구 7000여 가구는 청약도 겨우 끝냈다. 참여업체의 한 관계자는 "계약률은 안 봐도 뻔하다"고 말했다.

주택사업 침체는 지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6월 말 현재 수도권 미분양아파트는 9343가구이지만 지방은 5만5022가구(이상 건교부 통계)나 된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다. 수도권 미분양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줄었으나 지방은 33.4% 늘었다.

아파트가 다 팔려도 골칫거리는 남는다. 입주 문제다. 부산이나 대구 등 광역시에는 완공 후 빈집이 수두룩하다. 기존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이사를 오지 못한다는 게 업체들의 이구동성이다.

지방 주택시장이 침체한 데는 규제정책으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데 큰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을 지적한다.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분양받은 아파트로 입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청약심리도 덩달아 위축되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면 집을 사지 않을뿐더러 새 아파트를 분양받지도 않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업체들이 스스로 발목을 잡기도 했다. 수급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분양에 나선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2001년 3만5600여 가구가 분양된 데 이어 2002년 4만3600여 가구로 정점에 도달했으며 올해도 4만400여가구가 풀릴 전망이다. 한창때 지은 아파트가 지난해와 올해 입주하면서 집이 남아돌고 있다. 그러나 부산 D건설 관계자는 "공급과잉은 서울 업체들이 내려와 저지른 현상"이라며 "같은 곳에서 분양하더라도 브랜드에 밀리기 때문에 지방건설사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규제는 지역별로 달리"=지방건설경기를 살리려면 두 가지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나는 건축이든, 토목이든 일감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규제를 일부 푸는 것이다. 정부는 하반기 공공 공사를 상반기보다 40% 많은 23조5000억원어치 발주하기로 한 판에 더 이상 추가 확대는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신 지방공사에 지역업체 참여기준을 현행 50억원에서 8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했다. 업계는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며 효과에 의문을 나타낸다.

광주업체인 호반건설 이영 사장은 "공공 공사에서 지방 중견업체들이 참여할 여지가 전혀 없다"며 "특히 민자유치(BTL)사업은 자금력이 좋은 대형업체만 딸 수 있게 돼 있는데 정부 재정으로 발주하는 공사를 늘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부동산 규제책에 손을 대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부연구위원은 "건설경기를 살리려면 우선 위축된 부동산 시장의 숨통부터 틔워줘야 한다"며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양도세 감면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택협회.대한주택건설협회 등은 집값이 안정된 지방의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을 해제하라고 요청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7일 지방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관급공사 입찰제도 개선 ▶임대형 민자유치사업에 중소업체 참여 폭 확대 ▶지역별 주택정책 차등적용 등의 정책과제를 정부에 제시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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