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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 뜸들인 「실무내각」/뚜껑열린 거여조각 의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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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ㆍ민생난국 치유에 중점/청와대 비서진 강화… 6명이 교수 출신
노태우대통령 집권2기의 내각은 실전형으로 구성됐다.
지난 연말부터 떠돌기 시작해 근3개월만에 단행된 이번 개각을 두고 3당통합 이후 새로운 거여체제의 정국운영에 맞도록 대대적인 면모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들이 있었으나 경제난국과 민생치안 부재라는 현안들을 수습해야 한다는 절박한 부담 때문에 실무적 인사들을 주로 발탁하게 된 것 같다.
다만 정부의 26개 부처 중 15개부처 장관을 경질하고 청와대비서실을 교수출신 중심으로 전면 교체함으로써 실무형내각에 대한 이론형의 청와대 진용을 조화시켜 정부운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각의 진용은 참신성이 떨어지고 지극히 평범하며 성격도 모호하다.
3당통합으로 인한 야당의 내각참여 수요도 충족시키고 그러면서도 내각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이질적이고 특성을 분류하기 어려운 인사들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이번 내각의 초점은 이승윤경제팀의 등장이다.
균형발전론자인 조순부총리와 개혁주창자인 문희갑경제수석 대신에 성장론자인 이승윤ㆍ김종인팀이 들어섬으로써 경제정책의 선회가 예상된다.
이부총리나 김경제수석은 모두 성장우선론자들이다.
이부총리는 민정당정책의장 시절부터 우리 경제현실에 비춰 아직은 성장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의 급속한 추진에 반대,경제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김경제수석도 5공 초기 금융실명제 추진에 반대했던 이론가였고 한때의 복지 중심정책에서 성장중심의 현실론으로 바뀌어왔다. 따라서 새 경제팀은 안정ㆍ성장의 균형정책에서 성장우선정책으로 경제정책의 기조를 전면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미 시행에 들어간 토지공개념의 시행이 완화될 것이며 금융실명제의 추진 속도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기업중심의 정책이야말로 보수대연합의 가장 뚜렷한 성과이기도 하다.
내무ㆍ법무장관의 경질은 민생치안에 대한 책임추궁 성격이 짙다.
당초 김태호내무장관의 재임기간이 짧고 허형구법무장관의 후임이 마땅치 않아 둘다 유임쪽으로 굳어지는 듯했으나 연쇄방화사건ㆍ떼강도ㆍ마약의 확산 등 민생치안부재에 대한 국민여론을 의식해 교체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법무장관의 경우 지난해 라면파동등 몇가지 뚜렷한 실책이 있어 이에대한 지휘책임도 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개각의 또하나 특징은 민자당의 구 민주ㆍ공화계 야당출신의원들의 등용이다.
구 민정계까지 포함시킨다면 25개부처 중 민자출신 의원이 모두 5명 참여했다.
통합 이후 민주ㆍ공화쪽에서는 상당한 숫자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5명에 그친 것은 노대통령이 당의 영향력 밖에서 정부를 독자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번 내각에서는 민정당출신이 원내외 포함해 7명정도 됐던 데 비해 별로 늘어나지 않았던 점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며 야당의 체면을 살려준 정도다. 그러나 과거 야당출신 의원의 입각은 새로운 점이고 이들 의원입각자의 역할이나 기능도 주목된다.
강총리는 역대의 어느 총리보다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고 내각의 연속성을 위해서 유임됐으며 이상훈국방ㆍ정원식문교장관 등도 같은 맥락에서 유임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개각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 중의 하나가 청와대비서실의 개편이다.
노재봉비서실장의 경우 특보로 기용할 때부터 다음 비서실장이라는 언질이 있었다고는 하나 노대통령이 비서실 운영을 쇄신코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읽을 수 있다.
6공들어 대통령비서실 역할이 많이 축소되어 각 부처에서 통과절차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앞으로 비서실이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요업무에 대해서는 직접 관장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 같다.
이번 인사로 차관급이상 수석비서관 10명 가운데 노실장ㆍ이홍구특보ㆍ최창윤정무ㆍ김종인경제수석ㆍ김종휘외교안보ㆍ김학준사회담당 보좌역 등 모두 6명이 교수ㆍ박사출신이어서 비서실 운영이 이론형으로 흐를 염려도 없지 않다.
이번 개각에서 안기부나 민정수석실의 자료가 기초가 됐으나 입각통보등에서 박철언정무장관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장관이 『총리의 유임을 건의해 보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었다.
따라서 민자당은 물론 청와대비서실이나 행정부까지 그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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