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31 부동산 대책 마련 때 정부 '전세 품귀' 경고 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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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가을 이사철을 맞아 서울과 수도권에서 전셋값이 많이 오르고 전세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9% 올라 전주의 0.11%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특히 서민들이 많이 찾는 작은 평형 아파트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는 최근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전세 대란'의 실태 파악에 착수했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 8.31 대책을 수립할 때 정부도 이미 예견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전셋값 폭등 가능성을 정부가 미리 알고도 방치했다는 점에서 향후 정책적 책임론이 거론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1일 전세 대란 조짐과 관련, 재경부 간부회의에서 "최근 전세가격 폭등 보도와 관련, 철저한 현장 확인을 통해 실태와 원인 등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수급 요인부터 자녀교육 등에 따른 시장 패턴 변화까지 감안해 현장확인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던 한 고위 관계자는 "전세 대란 가능성은 이미 8.31 대책 입안 과정에서 논란이 됐다"고 말했다. 2005년 청와대.열린우리당.정부가 8.31 부동산대책을 마련할 때 임대주택 등 전세 수요를 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먼저 마련하지 않고 세제를 강화하면 전세 대란이 올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는 것이다.

주택 보유를 억제하고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대책은 부동산 가격 억제 효과를 즉시 낼 수는 있지만 시장의 전세 수요를 흡수하지는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전세를 놓고 있던 집 주인들 입장에선 향후 집값 상승에 따른 투자이익이 사라졌으므로 월세와 같은 임대수익으로 이익 실현에 나설 것이며 이에 따라 시장에서 전세 물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었다.

당시 정부의 일부 관계자들도 "전세가 급격히 월세로 대체되면 한국 특유의 임대제도인 전세 제도가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며 "월세가 전세에 비해 임대료가 훨씬 비싸므로 서민들의 부담이 급증하면서 전세 대란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주택을 소유가 아닌 주거 개념으로 바꿔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에 밀려 정책입안 과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가 중과됨에 따라 다주택자들에겐 전세를 보유할 매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특히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이런 우려는 가격 급등, 물량 부족, 월세 확산 등으로 현실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전세 수요를 수용할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당장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최근 116만 가구의 임대주택 건설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올해 시작해 2012년까지 완성되므로 시간 차가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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