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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창공의 꽃으로 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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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훈련 중 낙하산이 엉켜 위험에 처한 후배들의 생명을 구했던 특전사 요원이 낙하 중 난기류에 휩쓸리는 사고로 순직했다.

육군은 특전사 고공강하팀 소속 이현모(40) 상사가 7일 오후 한강 미사리훈련장 낙하훈련에서 함께 낙하 중이던 동료와 충돌 뒤 의식을 잃고 주택가 건물로 떨어져 숨졌다고 8일 밝혔다.

1만 피트 상공 항공기에서 동료 네 명과 낙하한 이 상사는 5000피트 높이에서 낙하산을 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난기류로 아직 낙하산을 펴지 않은 동료의 발목 부분에 머리를 부딪혔다. 전시에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은 공중에서 전술에 필요한 형태를 만드느라 근접 낙하 중이었다.

1986년 12월 특전사 부사관으로 임관한 이 상사는 3380여 회의 고공낙하 기록을 갖고 있는 특A급 요원이다. 교관으로도 활동할 정도로 배테랑인 그가 흔치 않은 사고를 당한 것이어서 부대원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특전사 관계자는 "난기류로 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짧은 순간 충돌이 일어나 이 상사와 부딪친 동료조차 정확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의식을 잃은 그의 낙하산이 4층 건물에 걸리면서 벽과 부딪힌 충격도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대원들은 그가 전우들의 목숨을 구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2004년 9월 미사리훈련장에서 훈련을 하다 난기류로 요원 5명의 낙하산이 뒤엉켰다. 교관으로서 상공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 상사는 낙하산 없이 급강하하는 고난도 기술로 이들에게 다가가 낙하산을 몸에서 떼내도록 유도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이들은 이 상사의 도움으로 보조낙하산을 펴고 안전하게 착지했다. 하지만 정작 이 상사는 낙하산 펼 시기를 놓쳐 그대로 강물로 빠졌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3개월가량 입원치료 뒤 훈련장으로 복귀했다. 특전사 한상조 중령은 "이 상사는 조용하면서도 책임을 다하는 성격인 데다 훈련 나가면 본인보다 후배를 먼저 챙겨 따르는 이가 많았다"고 했다.

이 상사의 장례는 특전사령관과 주한미군 특전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9일 부대장으로 치러진다. 육군은 1계급 특진을 추서키로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중3)이 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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