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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침투까지 노린 「제4땅굴」/작년말 낌새… 외신보도 파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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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작 의혹살까 역갱도로 확인
74년 11월 서부전선 고랑포에서 제1땅굴이 발견된 이래 75년 3월19일 철원의 제2땅굴,78년 10월17일 판문점의 제3땅굴에 이어 12년 만에 양구에서 제4땅굴이 발견됨으로써 또다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양구 제4땅굴은 그동안의 땅굴이 중ㆍ서부전선에서 발견된 것과는 달리 동부전선에서 발견됐다는 점에서 북한의 남침야욕이 전 전선에 걸쳐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양구 땅굴 발견은 올해초 김일성의 연두교시로 발단돼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콘크리트장벽 운운하며 분단고착의 책임을 한국측에 떠넘기고 있는 북한의 기만술책을 여지없이 폭로시켜주는 생생한 증거물인 셈이다.
국방부는 특히 그동안 발견된 3개의 땅굴을 둘러싸고 조작의혹이 있는 것을 중시,이번에는 북한이 뚫어놓은 땅굴 옆으로 판 역땅굴을 통해 마지막 2m 두께의 벽을 허무는 장면을 내외신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함으로써 북한의 공격용임을 입증시키는 배려를 하기도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제4땅굴이 지표에서 1백45m 아래의 화강암층을 뚫어 만든 것으로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1천31m쯤 파 내려와 남침용인 것이 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땅굴은 그동안 발견된 3개의 땅굴이 문산∼의정부∼서울,철원∼포천∼서울을 잇는 이른바 「서부회랑」(Western Corridor)의 주요 침공로를 겨냥한 것이었다면 제4땅굴은 상대적으로 침공이 불가능한 것으로 방심할 수 있는 동부전선의 후방 침투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한반도에 냉전구조의 정세가 완화돼 남북 적십자회담등 대화가 논의되기 시작할 무렵인 71년 9월 김일성이 직접 노동당의 대남총책이었던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 등에게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전법을 도입해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한 이른바 「9ㆍ25 교시」에 따라 현대적인 굴착장비를 도입한 뒤 72년 5월부터 북괴군 군단별로 전 전선에 걸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최근 중국에서 발견된 무폭음 폭약을 사용,땅굴작업을 계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땅굴이 지표로부터 50∼1백50m쯤 암반을 뚫고 만들어진 데다 고작 크기가 폭 2m,높이 2m쯤으로 작아 탄성파 등 초현대식 장비를 동원해도 실체를 확인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탐색실무자들의 설명이다.
더구나 기초조사를 통해 땅굴로 보이는 경우에도 이를 확인키 위한 역갱도를 뚫어야 하는데 실제 뚫고 들어가 보면 화강암 속에 1백만분의1 확률로 생기는 자연동공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우리측은 이번 양구땅굴의 경우에도 지난해 12월23일 징후발견 이후 2개월여의 확인작업을 해야 했으며 대당 8억여원을 호가하는 서독제 TPM 굴착기를 동원,3백여m의 역갱도를 뚫어 이날 최종 확인한 것이다.
우리측은 특히 탐색작업을 알아차린 북한측이 부비트랩이나 독가스 등 역대응책을 마련할 것에 대비,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느라 이번의 경우 우선 파이프를 박아 내시경을 통해 땅굴 내부를 감시해왔다.
국방부는 이번 땅굴의 경우에도 징후발견부터 확인작업을 하면서도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는데 현지작업에 참여한 미탐사팀(TNT)과 한국민간인 기술자들 등에 의해 1월중순부터 증권시장등에 소문이 나돌아 이를 보도한 언론사 간부가 보안사에 연행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번 땅굴은 70년대의 3개 땅굴과 마찬가지로 그 실체가 확인됨으로써 국제적으로 북한의 남침야욕을 다시한번 증명해 보일 수 있게 됐고 국내적으로도 대학가의 개학과 함께 격렬한 시위가 예상되는 시점과 맞물려 대공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이만훈기자〉
◎제1,2,3 땅굴의 실태/제1 74년 첫 발견… 궤도차 다니는 레일 설치/제3 서울에 가장 가까운 비무장지대 위치
북한이 전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위해 6ㆍ25와 같은 남침기습 공격과 대남 폭력혁명 전략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는 명약관화한 증거인 땅굴의 발견및 실태를 알아본다.
▷제1땅굴◁
74년 11월 오전 7시35분쯤 고랑포 동북방 8㎞ 지점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내에서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우리측 민경대원에 의해 발견됐다.
이 대원은 이날 순찰중 지표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 나오는 것을 발견,이어 구멍밑 지표아래 46㎝ 되는 곳에서 땅굴을 찾아냈으나 그순간 북괴군 진지로부터 3백발 가량의 총격을 받았다.
이 땅굴이 발견된 곳은 군사분계선 남쪽 1.2㎞ 지점으로 휴전선 남방한계선을 불과 8백m를 남겨놓고 공사도중 발견돼 유엔사는 이날밤 11시 이례적인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실을 세계에 폭로했다.
조사 결과 이 땅굴은 높이 1m22㎝,너비 91㎝로 벽은 조립식 콘크리트 벽체이며 천장은 콘크리트슬라브로 돼있었다.
그안에는 2백20볼트,60와트짜리 전등과 전선이 가설돼 있었으며 궤도차가 다닐 수 있는 레일까지 놓여있었다.
이같은 규모로 보아 이 땅굴은 사실상 영구적인 군사시설로 발각되지 않았을 경우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력과 포신을 비롯,각종 중화기 운반에 충분히 이용될 수 있을 정도다.
▷제2땅굴◁
제1땅굴이 발견된지 4개월 뒤인 75년 3월19일 중부전선 철원 북방 3㎞ 지점에서 또다른 땅굴이 발견됐다.
이 제2땅굴은 제1땅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 높이 2mㆍ너비,2.2m나 돼 차량ㆍ야포 등 중장비와 시간당 3만명의 병력은 물론 탱크까지 통과가 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 땅굴은 지하 50∼1백60m까지의 화강암층을 뚫어 만든 것으로 길이는 3.5㎞로 군사분계선을 우리쪽으로 9백m 넘어온 것이다.
▷제3땅굴◁
78년 10월17일 발견된 제3땅굴은 판문점 공동감시구역에서 군사정전위를 지원하는 유엔군 전진기지인 「켕트 키터호크」로부터 불과 1㎞ 밖에 안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땅굴은 임진각에서 4㎞,통일촌 민가로부터 3.5㎞ 밖에 안되는 서울에서 가장 인접한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됨으로써 그만큼 더 큰 충격을 주었었다.
이 땅굴의 길이는 1천6백35m로 지하 73m의 암석층을 관통하고 있으며 폭 2m,높이 2m로 제2땅굴과 같은 아치형의 대규모 땅굴로 차량 및 야포 등 중장비와 중화기로 무장된 전투병력이 3∼4열로 시간당 3만명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규모의 본격적인 남침용 땅굴이다.〈박종권기자〉
◇1,2,3,4호 땅굴 비교
●1호
〈1〉발견일시 :74년 11월15일
〈2〉위 치 :중부전선 고랑포 동북방 8㎞ 비무장지대 내
〈3〉크 기 :높이 1.22m 폭 91㎝
〈4〉깊 이 :지하 46㎝
〈5〉총 길이 :3,500m
〈6〉침투길이 :1,000m
〈7〉구 조 :콘크리트 구조물
〈8〉전술능력 :1개 연대병력 침투가능
〈9〉예상기습방향:고랑포∼의정부∼서울 65㎞
●2호
〈1〉발견일시 :75년 3월19일
〈2〉위 치 :철원 북방 13㎞ 비무장지대 내
〈3〉크 기 :높이 2m,폭 2.2m
〈4〉깊 이 :지하 50∼160m
〈5〉총 길이 :3,500m
〈6〉침투길이 :1,100m
〈7〉구 조 :암석층굴진ㆍ아치형
〈8〉전술능력 :1시간에 3만병력과 야포통과 가능
〈9〉예상기습방향:철원∼포천∼서울 101㎞
●3호
〈1〉발견일시 :78년 10월17일
〈2〉위 치 :판문점 남방 4㎞ 비무장지대 내
〈3〉크 기 :높이 2m,폭 2m
〈4〉깊 이 :지하 73m
〈5〉총 길이 :1,635m
〈6〉침투길이 :435m
〈7〉구 조 :암석층 굴진ㆍ아치형
〈8〉전술능력 :1시간에 3만병력과 야포통과 가능
〈9〉예상기습방향:문산∼서울 44㎞
●4호
〈1〉발견일시 :90년 3월3일
〈2〉위 치 :강원 양구군 동면 팔랑리 북방 30㎞ 비무장지대 내
〈3〉크 기 :높이 2m,폭 2m
〈4〉깊 이 :지하 145m
〈5〉총 길이 :조사중
〈6〉침투길이 :조사중
〈7〉구 조 :암석층 굴진ㆍ아치형
〈8〉전술능력 :1시간에 3만병력과 야포통과 가능
〈9〉예상기습방향:양구∼원주∼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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