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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주범 CO2를 남극에 가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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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8월 11일 겨울이 한창인 남극 세종기지를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그레그 미첼 교수를 단장으로 한 남극 해양 연구단이 방문했다. 쇄빙선을 타고 45일 일정으로 남극의 바다를 연구하다 세종기지 최문영 대장의 초청으로 킹 조지섬에 하루 동안 닻을 내린 것이다. 미첼 교수는 지난해 미국 해양학자가 발견해 전씨의 이름을 붙인 남극 해저 화산의 해저 지형도, 전씨를 추모하는 한.영문의 글, 연구진 39명 전원의 사인이 담긴 포스터를 최 대장에게 전달했다.

한글은 한국 여성 해양학자로는 처음으로 이번 남극 해양 연구에 참가한 부경대 해양학과 박미옥 교수가 썼다. 연구진의 국적은 한국.미국.일본.중국.이탈리아.프랑스 등 10개국이다.

박 교수는 이번 남극 연구에 참가하면서 국경을 뛰어넘는 과학자들 간의 애정과 남극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미국의 관심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는 지난달 말 귀국했다. 길이 100m나 되는 쇄빙선 너새니얼 팔머호 부선장인 마이클 터미넬은 "'전재규 화산' 발견 당시 그 화산에서 파낸 화산암을 전씨 부모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뜻을 박 교수에게 전하기도 했다.

남극 해양 연구 과제는 미국 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예산은 약 100만 달러(10억 원).미국은 이런 대규모 남극 연구 과제를 수시로 지원하고 있다. 이번 연구 여행은 철 성분이 식물 플랑크톤 수를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 연구해, 지구 온실 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남극에 가둬둘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나중에 쇳가루를 남극에 뿌려 식물 플랑크톤 수를 크게 늘리고 그 플랑크톤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먹어 치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죽어 해저에 가라앉으면 그 이산화탄소가 다시 공기 중으로 나오는 데는 수천 년의 세월이 걸린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이번에 남극 바다 1000~4000m 깊이에서 퍼 올린 바닷물을 분석 중이다. 식물 플랑크톤 수는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별로 없으며, 숫자는 영양분보다는 햇빛에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또 수심 100m에서 대규모 크릴 새우 떼를 발견했다. 이전까지 수차례에 걸친 탐사에서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크릴 새우는 해협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유기물을 먹는다는 사실과 그 이동 경로를 새롭게 밝혀내는 성과도 얻었다.

남극 연구 책임자인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그레그 미첼 박사(左)가 남극 세종기지 최문영 대장에게 ‘전재규 화산’해저 지형도와 연구팀원 전체의 사인이 담긴 포스터를 전달하고 있다. 포스터 그림 중간 해저지형도의 작은 밤색이 전씨 이름이 붙은 남극 해저화산이다.

"연구진의 절반이 여성이었으며, 대학생.대학원생 등이 인턴으로 참여해 밤 늦게까지 혹한 속에서 심해수를 퍼 올리는 등 온갖 일을 다하는 모습에서 프로의 근성을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여성의 역할과 인턴십이 활발한 것은 우리나라 과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교수는 연구 여행 내내 국제 공동 연구의 규모와 연구자들의 열의에 탄복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세종 기지에 대원을 파견하는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쇄빙선도 전재규 대원의 사망을 계기로 이제 건조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남극의 해저 지형도까지 거의 완성해 가고 있는 중이다.

박 교수는 남극 바다 4000m 등 수심을 달리해 퍼 올린 심해수와 크릴 새우 등 연구용 시료가 소포로 배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컴퓨터에는 10~20년 남극을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한 45일간의 기록 사진 수천 장이 담겨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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