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김현우<국립의료원 정신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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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비교적 착실한 공과대학생 권모군(22)이 응급실을 거쳐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권군은 얼마 전부터 부썩 말이 많아지고 분수에 맞지 않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옷·구두·전기제품을 마구 사들이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또 영어회화·중국어·컴퓨터학원과 헬스클럽등에 이틀사이로 등록하곤 막상 나가지는 않았고 의기양양해서 위대한 인물이 된 것으로 치부하고 잠도 설치고해서 응급실을 찾았던 것이다.
권군은 전체적으로 감정상태가 들뜨고 올라가 있었으며 쉴새 없이 말을 하는데 말의 주제가 자주 빗나가고 생각의 비약이 두드러졌으며 종종 외국어를 섞어 썼다.
『헤드(머리)가 워낙 좋아 남들이 선망하고 있으며 곧 외교관이 되어 세계의 피스(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느니 『취미는 당구고 명예3단쯤 되나 조금만 노력하면 중국어도 진짜7단이 되어 중국대륙에 코리아의 혼을 심겠다』는 등 횡설수설하면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감정이 복받친 듯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으며 자기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 옆에서 너무 걱정해서 며칠 간 쉬면서「사업구상」을 하겠노라고 했다.
자세히 병력을 물어보니 심하지는 않았지만 2년 전 한 두달 기분이 가라앉아 우울한 시기로 단정할만한 기간이 있었다.
권군의 경우를 조울병(조울병)이라고 하며 요즘엔 정동장애라는 용어로 바꿔 부르고있다. 이병의 기본개념은 정서 혹은 기분이 큰 폭으로 올라가는 시기와 내려가는 시기가 혼재해 있는 질병으로 정신분열증과 더불어 정신의학의 관심을 끌어온 두 가지 정신병중 하나다.
과거 심리적 해석으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최근엔 신경생화학적 또는 신경내분비학적 접근이 두드러져 있다.
즉 몇 가지 생화학적 물질이 몸 안에서 증가하거나 감소함에 따라 감정이 들뜨는 조증상 태가 되거나 감정이 가라 앉는 우울상태로 된다는 게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으며 이를 생화학적 변화에 내분비계통의 변화가 동반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일사광선의 양이 부족해도 감정상태에 변화가 오는 것으로 판명돼 신경 생리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환자의 심리상태 파악, 경과에 대한 설명등이 필요해 정신및 심리치료를 병행하지만 약물요법이 근간이다.
권군의 경우 기본적 신체검사에서 이상이 없음이 확인돼 조울증의 치료·예방효과가 있는 약(리치움)을 즉시 투여하기 시작했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항정신병약을 초기에 같이 썼다.
한달 반 정도의 입원 생활후 권군은 현재 통원치료중이다. 리치움을 쓰고 있고 적절한 용량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끔 혈중농도를 측정하고 있으며 2년째 별 탈이 없다. 그래도 안심하기 위해선 1년 이상 더 치료할 계획이다. 김현자 <국립의료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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