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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교수 "이젠 펜을 놓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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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한양대 명예 교수가 50여년간의 집필활동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했다.

리교수는 "이제는 지적 활동을 마감한다"고 밝혔다고 5일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그는 일생 동안 허위와 우상을 깨고 그 속에서 진실을 알려온 '참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리교수는 최근 출간된 '리영희 저작집'(전12권.한길사)과 관련, 지난 3일 저녁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개인에게는 무한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할 시기가 있는데 그 시간이 온 것 같다"며 "지금까지 쓴 글들을 묶은 저작집 출간으로 지적 활동, 50여년간의 연구와 집필생활을 마감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육체적 기능이 저하돼 지적 활동을 마감하려니 많은 생각이 든다"며 "그러나 내가 산 시대가 지금 시대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왔다고 봤는데, 마침 그 한계와 지적 활동을 마감하는 시기가 일치해 하늘이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걸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00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건강을 많이 회복하긴 했으나 집필작업은 힘겨운 상황이다.

리교수는 지금까지의 글쓰기를 통해 "진실이 거울처럼 통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썼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를, 우리 국민과 국가를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거짓에 대해서, 허위에 대해서 밝혀내고 싶었다. 진실을 가린 거짓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하려는 개인, 집단, 사상,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려 했다."

그는 "현실과 떠나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일들이 이렇게 돼서는 안 되고, 저렇게 돼야 한다는 의견은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군 원로들이 반대를 표명한 것과 관련, "오늘날 남북문제, 작통권 문제는 과거 집권세력이 거짓으로 꾸며낸 논리체계들에 의한 것"이라며 "그들이 하는 소리야말로 내가 깨우치려고 한 거짓의 논리였다"고 밝혔다.

그는 "현실과 담을 쌓기 위해 그동안 지적 활동에 편리하게 꾸렸던 집의 분위기를 싹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재작년부터 책을 정리해왔다. 군사, 정치, 국제관계, 중국 근현대사, 일본이나 동북아시아 등 현실적 문제에 관한 서적을 관련 연구자 등에게 모두 나눠주고 있다. 동서양 고전, 불교서적을 읽고 있다. 이사를 해 지금까지의 생활양식도 바꾸려 한다."

리교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이라 할 수 있고, 마치 자기가 영원히 선두에 서서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오만"이라며 "운명에 대해 겸손하게 받아들이려 한다"고 전했다.

<디지털뉴스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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