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우선 당­정부터(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새운동」으로 국민 들먹이지 말라
정부와 민자당이 사회 각 분야의 개혁을 위해 국민운동으로 「새정신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라는 데 대해 취지는 이해가 되면서도 또 무슨 국민운동인가 하는 뜨악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잇따른 방화등 각종 범죄나 세태를 보면 확실히 우리 사회의 기강은 흐트러져 있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뭔가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ㆍ여당이 자제ㆍ봉사ㆍ화합 등을 기본정신으로 하여 공직사회와 지도층 내부의 기강확립ㆍ부조리 척결 등 대대적인 개혁운동을 펴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가 경험한 각종 국민운동은 흔히 친여조직 활동이 되고 실제 국민생활과는 유리된 채 요란한 구호로만 전개됐기 때문에 이번에 정부ㆍ여당이 계획한다는 「새정신운동」역시 과거와 비슷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갖게 되는 것도 숨길 수 없다. 5ㆍ16후의 국민재건운동,5공에서의 사회정화운동이나 새마을운동 등이 모두 거창한 구호와 요란한 수사들을 동원했지만 정당성없이 출범한 정권의 들러리역만 했다는 기억뿐이다.
건국후 지금껏 장기집권ㆍ독재ㆍ부패ㆍ특권ㆍ특혜 등 이 나라를 골병들게 한 장본인은 국민이 아니라 집권자요,지도층이었는데도 이들은 걸핏하면 국민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각종 국민운동을 강요했던 게 아닌가.
국민운동에 대한 과거의 이런 나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와 민자당이 진정으로 사회 각 분야를 개혁하고 분위기를 쇄신하자면 바로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국민운동을 벌이기 보다는 정부ㆍ여당 내부의 과감한 자체정화와 부조리ㆍ비위척결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한다. 여권 내부와 정부내의 이런 조치없이 국민운동을 해봐야 실효도,설득력도 나오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여권 내부만 해도 개혁하고 정리해야 할 요소가 많다. 기왕 「새정신운동」을 전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니 여권 내부에 있는 구독재와의 관련요소,부패와의 관련요소,특권ㆍ특혜와의 관련요소 등을 하루 빨리 개혁하길 촉구하고자 한다. 우선 이런 요소들은 각종 인사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고위공직은 물론 민자당의 조직책ㆍ당직에서 정리대상 인사들을 기용해서는 이런 운동이 처음부터 될리가 없다. 그리고 현역의원이나 고위공직자를 막론하고 범법사실이 있으면 예외없이 의법처리 해야함은 물론이다. 추구하고자 하는 검소ㆍ자제ㆍ봉사도 국민에게 주문하기에 앞서 정부ㆍ여당을 포함한 지도층부터 솔선해야 한다.
이런 일은 굳이 국민운동을 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ㆍ여당이 평소 늘 해야 하는 일이다. 더구나 민자당이 3당통합에 의해 거대여당으로 출범한 만큼 스스로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만한 자기쇄신조치는 자구적 노력이라고 할 만하다.
최소한 이런 스스로의 노력이 있어야 국민운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우리는 최근 우리 사회의 들끓는 범죄,퇴폐ㆍ향략풍조,과소비,심화되는 각종 갈등현상등을 보면 사회 분위기를 일신할 과감한 개혁조치들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90년대의 새로운 내외환경에서 국제경쟁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활력을 재충전할 정신적ㆍ제도적 바탕을 새로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정부ㆍ여당 역시 이런 인식에서 새로운 국민운동을 생각한 것이라면 그것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과거경험과 현실의 조건에서 과연 어떤 일이 필요하고 현실성이 있는지를 냉정히 검토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