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옮겨 '서울 경제'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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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제일 기분이 좋았던 건 북악산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혼자 누리는 게 좋았는데 자꾸 오다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듭디다. 서울 시민들이 옛날에 밟았던 자국을 보면서 시민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돌려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월 북악산 1차 개방을 앞두고 사전 답사를 함께한 시민들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노 대통령은 "해외 나들이 때 대통령 전용기를 타는 것보다 북악산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더라"고 말했다.

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과 더불어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산이다. 서울의 옛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됐다. 그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바람에 일반 시민들에게 이 산은 '금단의 땅'이다. 청와대는 최근 이 산에 있는 숙정문을 개방했다.

◇여전히 배타적인 '권부'

청와대 앞길은 낮 시간엔 통행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8월 29일 오후 기자가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앞을 지나 청와대 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한 사복 경찰이 막아섰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에게 기자는 산책 중이라고 답했다. 청와대 앞 인도를 지나는 동안 간간이 행인들과 마주쳤지만 길 건너 청와대의 담장을 끼고 걷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근무 중인 사복 경찰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청와대와 인접한 인도는 일반인이 통행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복궁 북쪽 문인 신무문 앞에 이르자 일단의 중국 관광객이 이 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자 역시 품고 다니는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자 지척의 사복 경찰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느린 걸음으로 10여 분 거리. 최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 수석비서관을 인터뷰한 일이 있는 기자조차 뚜렷한 용건 없이 청와대 앞길을 지나는 동안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많은 시민이 여전히 이 길은 통행금지인 줄 알고 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출범 초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란 표어를 내건 '참여정부'에 이르러서도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인 청와대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권부(權府)'로 남아 있다.

청와대의 넓이는 7만6000여 평이다. 그러나 청와대 안보를 위해 시민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 땅은 수십만 평에 달한다. 그 주위에 둘러쳐진 유형.무형의 '폴리스 라인'은 시민들을 잠재적인 시위자 내지는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 거대한 '장원(莊園)'은 오로지 대통령 1인을 위한 공간이다. 그렇게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동안 어느새 청와대는 대통령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돼 버렸다. 대통령은 고성(孤城)에 머무느라 국민과 격리됐고 측근과 참모들의 인의 장막에 유폐됐다. 이런 물리적인 제약이 어쩌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의식을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5.31 지방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했던 이계안 의원은 "청와대를 용산 민족공원 터로 옮겨 대통령이 국민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청와대를 포괄하는 공원 전체를 관광자원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청와대 이전론'을 제기한 사람은 이 의원이지만 청와대 이전 자체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김경재 전 의원이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DJ) 국민회의 후보 선대본부 홍보위원장으로 있던 그는 김 후보에게 제안해 "제왕적 독재와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이 돼 버린 청와대에 당선되더라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끌어낸다. 이 공약은 그러나 빛을 보지 못했다. 선거 종반 신문 전면광고에서 탈락한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당시 DJ는 막상 당선되면 청와대에 들어가 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김 전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선대본부 홍보본부장을 맡았다. 노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엔 청와대 이전이 포함됐다. 당시 노 후보의 신문 광고 카피는 '청와대와 북악산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였다. 그러나 2004년 가을 그의 행정수도 구상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청와대 이전도 백지화됐다. 2002년 대선 때는 모든 유력 후보가 당선되면 청와대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는 "정부 종합청사에서 집무하겠다"고 선언했다.

◇용산으로 옮기면 경제효과 엄청나

김경재 전 의원은 "청와대가 땅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어 주변 개발에 장애가 되고 있다"며 "청와대 경비를 위한 군부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까지 합하면 엄청난 땅이 사실상 청와대 때문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옮기면 그 터와 주변 지역이 강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서민을 위한 주택 단지를 만들 수도 있고,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서울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어요."

이계안 의원은 "용산 기지 이전으로 서울 재배치의 모멘텀이 생겼고, 청와대 이전이 이런 재배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엔 그런 모멘텀이 없었습니다. 청와대를 옮겨 대통령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구호만 있었죠. 그러다 보니 청와대 이전론은 선거 때면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면 흐지부지되고 말았죠."

김 전 의원도 "용산기지 이전으로 청와대 이전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장점이죠. 대통령 관저의 입주는 용산민족공원의 메인 컨셉트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국민운동 내지는 한 편의 국민 드라마로 만드는 거예요. 대통령은 국민과 살갗을 맞대고 있어야 합니다. 청와대 이전이야말로 '열린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죠."

청와대 이전의 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를 본래대로 경복궁의 후원으로 복원하고 용산민족공원을 대통령 관저가 자리 잡은 공간으로 가꾼다면 서울의 4대 문 안 전역을 관광 자원화할 수 있다. 내셔널 캐피털 공원의 일부가 돼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 미국의 백악관이 그 모델이다. 관광객이 늘어나면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고도(古都) 서울의 비전을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재정립할 수 있다. 서울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자 강남.북 균형 개발의 대안이다. 청와대 이전은 '서울의 재구성'이다.

이필재 중앙일보시사미디어 편집위원 (jel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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