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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6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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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반탁주도 김구 미에 미움사/송진우 암살로 테러위협 느낀 공산당간부 잠적
신탁통치에 대한 임정 비상회의 석상에서 신탁통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송진우가 암살당한 사건은 공산당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공산당에서는 공청원들을 동원해 정판사주변에 배치하고 테러에 대비,당사경비에 나섰다.
그것뿐 아니었다. 중요간부들은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 공산당중앙위원회가 곧 습격당할것 같은 긴박한 분위기었다. 전평ㆍ전농등 노동자ㆍ농민단체들에서는 폭력행위를 배격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폭력과 긴장된 정국을 풀기위해 인공에서는 홍남표ㆍ이강국ㆍ홍증식등이 임정의 최동오ㆍ성주식ㆍ장건상등에게 통일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했으나 임정측에서는 인공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인공에서는 △탁치는 민족통일의 완성으로서 해결 할것 △모든 문제는 민주적으로 해결할 것 △산업부흥을 위해 자기직장을 지킬것 △철시와 파업은 대중생활을 파멸시킨다 △테러행위는 민족의 분열이며 민족의 자멸이다 △탁치문제를 이용해 재대두하는 친일파ㆍ민족반역자를 퇴치하자 △탁치문제를 이용해 자파전제를 수립하려는 정치브로커를 배격하자 △탁치문제를 기회로 민족의 통일과 생활을 교란하는 무책임한 지도자를 반대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공산당에서는 1월2일 모스크바삼상회의결정을 공식적으로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신중히 검토해 이를 찬성한다. 연합국의 우호적 원조를 제국주의적 위임통치제로 왜곡하고 연합국을 적대시하는 김구일파의 반탁운동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모스크바 결정은 카이로 결정을 발전 구체화시킨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김구일파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한것은 공산당에서는 송진우를 암살한 배후세력이 김구라고 단정했기 때문이고,또 「제국주의적 위임통치」를 들먹인것은 이승만이 과거 『조선을 국제연맹이 위임통치해 달라』고 요청한 일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1월3일 드디어 공산당 서울시 인민위원회ㆍ반파쇼공동위원회의 공동주최로 서울운동장에서 민족통일자주독립촉성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노동조합ㆍ농민조합ㆍ청년동맹등 1백여개의 사회단체와 서울시내 2백70여개의 동회대표들이 서울운동장을 빽빽히 메웠다. 이 대회에 이주하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주하는 해방직후 원산에 김일성이 와서 분파활동을 하자 체포한 일이 있는데 그 김일성이 소련의 앞잡이로 정권을 쥐자 월남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언제 월남했는지는 확실히 알수없다. 12월17일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위원회때 김일성이 처음으로 비서로 취임했는데 아마 그 직전에 월남해 온것같다. 1월3일의 서울운동장 대회때 박헌영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이때 박헌영이 평양에 가서 삼상회담 결정을 지지하도록 소련군 정치부에서 지시를 받아왔을 것이라는게 통설로 되어있으나 박헌영이 평양에 가는것이나 돌아온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지방출장에서 12월29일 저녁때 서울에 돌아왔는데 그후 며칠동안은 박헌영뿐만 아니라 공산당의 정치위원급 간부는 아무도 본적이 없다.
송진우암살을 계기로 해 공산당의 중요간부는 모두 잠적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신탁통치문제는 조선의 운명과 공산당의 운명에 있어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박헌영이 평양에 가서 소련당국과 상의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1월3일 서울운동장에 모인 군중들은 시가행진을 했는데 서울운동장을 나올때 어디서인가 돌팔매가 빗발같이 날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공산당의 중요간부 강문석이 돌이 맞아 부상하기도 했다.
1955년 평양에서 김일성이 박헌영을 죽일때 남로당간부들을 잡아다가 하나하나 박헌영의 욕을 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그때 강문석은 하도 할 욕이 없어 『46년 1월3일 서울운동장의 찬탁대회때 박헌영은 나처럼 중요한 간부를 현장에 내보내서 부상을 입혔다. 그는 간부를 아끼지 않은 과오를 범했다』고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 김일성은 『그것도 미제국주의자의 지시를 받아 그런것이다. 이로써 박헌영은 확실히 미제의 간첩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말이 새어나와 「서울운동장에 간부를 보낸놈은 확실히 미제의 간첩이고 평양운동장에 간부를 보낸놈은 확실히 소련의 간첩이다」「확실히… 확실히… 」라는 말이 한때 평양사람들의 유행어가 되었었다.
신탁통치를 제일 반대한것은 임정과 김구였었다. 임정은 「미군정청 경찰기구및 한국인 직원은 전원 임정의 지시에 따를것이며 탁치반대는 질서있게 하라. 이 운동은 최후까지 계속하라」는 포고문을 내무부장 신익희명의로 선포했다. 이로써 김구와 임정은 미군정의 결정적 미움을 사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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