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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동구 |열기의 현장을 가다― <21> 헝가리 농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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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7면

『크게 키워서 몸을 둔하게 했지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인근 농업협동조합으로 가는 자동차안에서 헝가리인 통역이 이 나라 농업생산구조의 문제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사회주의 국가는 일본을 위시한 서방의 경박단소와 달리 중후장대가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생산체규모에서도 큰 것을 추구해 왔다.
사회주의 산업의 골격인 생산과 분배의 중앙통제는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자원의 낭비를 막고 분배를 공평하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같은 정부통제의 산업구조는 정부가 관리하기 쉬운 조직체계를 만들어 내고 정부의 생산·분배 개입으로 관료주의가 크게 자리를 잡게됐다.
정부가 산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생산구조를 단일화하고 그 결과 생산단위의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생산자인 노동자들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독립생산개체가 아닌 큰조직에 예속된 임금노동자로 변했다.
이같은 산업구조는 헝가리는 물론 전사회주의 국가가 갖고있는 동일한 체제이자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도 각국이 함께 나누어 갖고 있는 셈이다. 부다페스트 동쪽, 자동차로 1시간

<8시간근무 철저>
거리에 있는 라코시메제예 농업협동조합은 헝가리가 자랑하는 「성공한」예로 꼽히고 있다. 이 조합은 자체 5천km(50평방km)의 농지를 갖고있어 사방 7km이상의 거대한 규모였다.
큰길에서 2백∼3백m가량 안쪽에 위치한 조합중앙사무실 건물은 2층 시멘트건물로 한국의 시골 면사무소 2배정도 크기였다.
라코시메제예조합의 숄로이 야노시조합장은 그의 집무실에서 검은 색이 나는 짙은 청색의 레코프란코스(푸른색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내놓으며 취재진을 맞았다.
큰 키에 농업과는 관련이 없을 정도로 말쑥한 신사차림의 숄로이 조합장은 라코시메제예조합이 『헝가리 경제의 대표적 생산조직』이라고 자랑을 먼저 늘어놓았다.
이 조합 중앙사무실 주변에는 연간 5만t의 가축사료를 생산하는 사료배합공장과 5백80마리를 기르는 젖소 및 비육우 사육장등이 밀집해 있었다.
이 조합은 포도·밀등 농작물외 사료공장·포도주공장·섬유공장·농기구제작공장등 농업과 관련된 산업을 통한 농업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조합은 또 젊은 농업종사자의 도시이주를 막기 위해 농업대학을 운영하는가 하면 중고자동차판매영업소까지 운영하고 있다.
숄로이 조합장은 라코시메제예조합이 벌이고 있는 사업은 무려 3백60종이라고 설명했다.
조합회원은 모두 1만3천8백명으로 조합자체가 하나의 도시규모를 갖추고 있다.
회원들은 농장에서 뿐만 아니라 각공장과 행정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며 근무는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철저하게 시간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축사육장도 야간근무자가 교대제로 근무, 도시공장 노동자와 근무시간조건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숄로이씨의 말이다.
이 조합의 연간 생산총액은 약13억포린트(2천3백만달러). 이중 농산품과 공업생산품이 반반씩으로 『웬만한 것은 조합자체생산품으로 자급자족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농업노동자들인 이 조합의 회원들은 월수입이 1만4천포린트 안팎으로 8천5백∼1만포린트의 도시노동자보다 많다고 숄로이 조합장은 주장했다.
헝가리는 현재 약1천3백개의 농업협동조합이 있다. 이중 5백개는 자립이 가능하고 3백개 정도는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나머지 5백여개는 겨우 지탱하고 있는 정도라고 숄로이조합장은 헝가리농업협동조합의 실상을 전했다. 숄로이조합장은 이처럼 헝가리농업협동조합 60%이상이 경영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술의 낙후와 생산시설 재투자의 미약, 그리고 낮은 생산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계이른 관주도>
헝가리정부는 40년전 사회주의국가가 되면서 농업을 집단생산체제로 바꾸어 정부관리로 모든 것을 운영해 왔다.
농업협동조합은 농작물의 생산을 조직화함으로써 생산을 가속화하고 농부들의 생활을 전체국민소득 수준과 동등하게 끌어 올리는데 있었다.
그러나 개인농지소유 농부들이 농토를 조합에 귀속시키면서 임금노동자가 되고 또 시간제 노동자가 되면서 생산열의를 잃은 것이 생산성 하락의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사회주의국가 농업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난제로 꼽힌다.
농부들은 자기가 힘써 생산한 농작물이 조합소유로 넘어가고 배분은 조합과 정부소유거래기구 통제로 바뀌면서 자기에게는 소득으로 「현금」만 되돌아 올 뿐만 아니라 생산업적과는 관계없이 똑 같은 액수의 임금을 받게되자 실망하게 됐다.
따라서 농부들은 밭에서 자라는 곡물이나 가축에 대해 애착을 잃게되고 시간만 때우면 곡물이나 가축이야 어떻게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게됐다.
농업은 기본적으로 육체노동이 주가 되고, 그래서 농부들은 힘들게 일하기 보다 「개인이익」을 앞세우고 같은 임금의 「수익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하는 양을 줄이는」 쪽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공산품에 눈돌려>
숄로이조합장은 라코시메제예조합의 특징은 주소득원이 농산물이 아니고 농업관계 공장들, 즉 포도주공장과 섬유공장·농기계공장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 공업생산물이 전체 순수익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농작물 생산이 필수적인 것이긴 하지만 수익률이 낮아 정부가 요구하는 양에 맞춰 생산하는 쪽으로 생산목표가 바뀌고 농민들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공업생산품생산에 주력하게 된 때문이다.
농업협동조합은 다른 대규모중기계가 아닌 농업관계 경공업에 치중하고 있으나 이것은 농업생산단위가 공업생산단위로 변질하는 결과만 빚게 됐다.
따라서 농업은 농업지역에서 농업의 위력에 밀려 생산량도 줄어들고 빛을 잃게 된 것이다.
이같은 농업의 문제가 심화되면서 헝가리정부는 지난 81년 경제개혁을 단행, 농업협동조합의 단위별 자주경영제 도입을 지시했다.
숄로이조합장은 라코시메제예조합은 회원들 사이에서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가 자체생산 및 경영을 책임지고 있으며 모든 생산과 판매는 조합이사회가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우리 조합의 운명은 모두 우리가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숄로이조합장은 또 헝가리경제개혁은 농업협동조합의 경영독립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며 『이제는 정보를 통하지 않고 우리 조합의 생산품을 외국에 직접 파는등 무역부문도 독립하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부통제가 없어지면서 생산량의 자율조정, 사업의 독자적 확장및 축소가 가능해지고 판매가격도 수요자 요구에 따른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숄로이조합장은 아직도 판매부문에 정부가 깊이 개입하고 있어 『받고 싶은 만큼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산물이나 공산품을 일부 부다페스트에 직접 공급하는 것도 있으나 이것은 아직도 양적으로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유제도입 바라>
그는 『정부의 거대한 기구가 썩기쉬운 농작물을 체계적으로 보관·수송·거래해주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라며 사회주의식 분배방식에 대해 계속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숄로이조합장은 그러면서도 『우리가 생산한 것을 부다페스트에 직접 팔고싶다』는 말을덧불였다.
동구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헝가리는 경제개혁의 선두주자로 가장 앞서있다.
헝가리에는 많은 자영업자가 등장, 사회주의 경제방식에 중요한 도전이자 활력소로 힘을키워나가고 있다.
농업부문에서도 6천평방m까지는 개인소유가 가능하고 돼지등 가축도 2∼3마리씩, 많을 경우는 20여마리씩 기르면서 자기가 생산한 것을 자신이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소규모 농지는 생산량도 적고 판매에도 어려움이 많아 농부들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농산물 생산만으로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헝가리 농업의 문제는 조합단위의 생산체제에 대한 비판을 낳고 있으며 정부관리들마저도 「개인소유제」를 도입, 농업생산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팔 라슬로 산업부제1차관은 『헝가리경제의 현위기 타개는 사유제 도입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의 정치변혁과 10월의 공산당대회를 겪으면서 공산당이 몰락하고 새로운 정치구조가 등장, 헝가리는 현재 맹렬하다 싶을 정도로 정치·경제개혁에 몰두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라코시메제예조합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숄로이조합장은 『이제 모든 관리를 조합 스스로가 결정하게 돼 연간 13억포린트에 달하는 예산을 적절하게 운용하자면 조합장은 훌륭한 은행가가 돼야 할판』이라고 말했다.
생산관리와 판매관리, 그리고 해외수출을 통한 금융관리까지 하자면 기존 사회주의 방식의 좁은 시각에서는 오늘의 헝가리 변혁에 동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합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었다. 글 김동수부국장 진창욱기자 사진 주기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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