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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앙위 총회 무엇을 남겼나(전문가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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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 개혁 강력한 추진력 얻었다”/고르바초프 지도력 대폭 강화/인본주의 혁명… 「탈이념」 가속화/공산당의 동구식 몰락은 속단/민족분규로 연방제 궤도 수정/당정분리로 보수파 설땅 더욱 좁아져
지난 5∼7일 사흘동안 열린 소련 공산당 중앙위 총회는 70여년 소련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게 됐다. 이번 중앙위 총회는 그동안 소련의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이었던 공산당 1당독재를 포기함으로써 당과 국가를 분리하는 역사적 조치를 취했다. 뿐만아니라 공산당 정치국의 폐지,중앙위 축소 개편,대통령중심의 정부조직,시장경제의 도입과 사적 소유의 인정,그리고 「인간적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당 기본이념 변경등 실로 경천동지 할만한 혁신적 개혁조치들이 채택됐다. 당초 보수파 우세의 당중앙위 편성,최근 경제난국과 민족분규 등으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됐던 고르바초프는 이번 회의로 또 한번의 정치적 대승을 거두었으며 앞으로 더욱 과감히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급변하는 소련정세,특히 이번 중앙위 총회의 역사적 의의,소련 공산당의 앞으로의 위치 및 역할,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의 장래 등을 소련 전문가인 김부기(외교안보연구원 교수)ㆍ문수언(숭실대 교수) 두학자의 대담으로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김부기 교수=현재 고르바초프가 추구하는 방향은 한마디로 「인본주의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을 주인 아닌 노예화하는 스탈린식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를 폐지하는 것이죠.
이번 열린 당중앙위 총회에서 소련에 복수정당제의 출현이 현실화 됨에따라 소련내에서 인본적 민주주의가 완성됐음을 의미합니다. 이와 더불어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계속돼온 소련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평가됩니다.
현재 소련 공산당 당규상 중앙위원의 임면은 당대회에서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브레즈네프 시대의 보수파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도 개혁파들과 계속 경쟁을 벌일 것이며 이에 따라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이나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을 좌절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봅니다.
문수언 교수=고르바초프는 지난 5년간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해왔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노출됐습니다.
그동안의 점진적 개혁이 오히려 정치적 혼란만 가중시켰고 위기상황이 초래됐다고 고르바초프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은 세가지 측면에서 지적할수 있습니다.
첫째,소비재 부족이 심화돼 페레스트로이카 이전보다 생활 필수품 구입이 더 어려워졌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재정적자의 증가입니다. 89년 소련의 재정적자는 1천억루블입니다. 이는 소련 전체 GNP의 12%로 미국의 재정적자가 GNP의 3.4%임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적자입니다.
셋째는 사회적 혼란이 「구조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비재 부족으로 암시장이 늘어나고 미국의 마피아와 비슷한 범죄조직이 늘어 각종 부정거래를 통해 사회ㆍ경제구조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김=이번 총회에서 채택된 새 당강령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수정당제 도입입니다. 이제까지는 공산당 1당체제하에서 정치적 다원주의가 추구돼 왔으나 이번 조치를 계기로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민주화를 향한 거보를 내디딘 것으로 평가됩니다.
또 서기장대신 당의장제를 실시하는 것은 집단지도체제에서 단일지도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는 개혁정책에 강력한 정치권력의 바탕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당대회를 6월말이나 7월초로 앞당기는 것은 결국 개혁에 장애가 되는 보수파 인사들을 서둘러 제거하고 정치개혁을 가속화 시킴으로써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 생각으로는 고르바초프가 정치개혁을 서두르는 것은 페레스트로이카를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키 위해 더욱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이번에 당정치국을 폐지하고 수가 늘어난 집행위를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것입니다.
김=소련의 근본원칙이었던 공산당 1당독재를 포기한 마당에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이 앞으로도 계속 집권을 추구,복수정당제하에서 정당간 자유경쟁을 통한 정권경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1919년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 당의 전위적 역할과 일당독재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즉 당시 소련 인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농민들의 의식수준이 너무도 낮기때문에 프롤레타리아의 전위인 당이 당분간 소위 「교육독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경쟁 및 복수정당제가 도입된다면 이는 과거 레닌의 본래 의도로 회귀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소련 공산당과 동유럽국가들의 공산당은 그 정통성과 자생력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동유럽의 공산당 정권은 제2차대전후 소련이 토착 공산세력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을 추종한 무리들을 중심으로 수립한 괴뢰정권으로 정통성과 자생력이 모두 결여돼 있습니다.
여기에 현지 국민들의 반소 민족주의가 가세,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그 존립자체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경우 내부혁명으로부터 비롯된 뿌리깊은 투쟁역사를 통해 수립된 정부로 정통성과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련 공산당이 요즘의 동유럽 공산당들처럼 자체붕괴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봅니다.
문=고르바초프가 원하는 것은 당의 해체가 아니라 개편이라고 봅니다.
당이 지금까지 행정부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사회 전반에 대해 전횡적 통제ㆍ지도기능을 담당했던 점에서 벗어나 당은 대국적 지침과 계획만 수립하고 국민을 계몽하는 역할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 역할의 재편이 있더라도 이것이 소련 공산당이 붕괴,패배했다고 보는것은 성급하다고 봅니다. 공산당에의 권력집중은 레닌이 먼저 주장했지만 이는 공산주의 발전에서의 「잠정적」인 과정에 초점을 맞췄을 뿐입니다.
서방측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실패로 끝나고 그가 실각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을 그동안 계속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수파들이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반대가 많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련 사회의 변화에는 페레스트로이카 이외에 대안이 있을수 없다고 봅니다.
또 가령 보수파가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킨다 해도 이렇다할 「대체인물」이 없습니다.
민족분규ㆍ분리독립문제도 러시아 공화국외 다른 14개 구성 공화국이 석유ㆍ가스ㆍ공산품등을 연방정부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완전분리독립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연방제는 수정ㆍ보완되어야 하고 또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련 국민은 슬라브계와 비슬라브계가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러시아 민족이 우대받음으로써 다른 민족의 불만이 큽니다.
김=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친 권력개편을 통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져왔습니다. 그결과 현재 소련내에서는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보수파 세력이 당 중앙위에서 다수를 점하고는 있으나,이들이 고르바초프를 축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또 고르바초프의 최고회의 의장 직위는 5년 임기로 헌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습니다. 설혹 당 중앙위가 그의 서기장 직위를 박탈할 수는 있겠지만,중앙위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통치분야에서 개혁세력으로 대체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중앙위만으로 고르바초프를 몰아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문=소련의 개혁이 앞으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그리고 세계질서에 대해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련사회는 페레스트로이카로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교조주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의 회생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그동안 계속돼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 이념대립이 완화되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입각한 개혁외교는 종래의 계급투쟁에 입각한 대립외교를 지양하고 지구적 의미에서 동서 화해와 평화공존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장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김=소련의 개혁조치가 세계질서에 미칠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결양상을 변화시킨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주장하는 인본화는 민주화와 시장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서방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대폭적인 중복성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동서관계는 탈 이데올로기화를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오늘날 공산국가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가지를 들수 있습니다. 소련의 영향력 행사 여부,자생력 보유 여부,국민의식이 그것입니다. 현재 큰 정치적 변화를 겪고 있는 동구국가들은 강력한 소련의 영향력이 존재하고 자생력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국민들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의식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공산정권은 변화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지만 중국ㆍ북한ㆍ베트남ㆍ쿠바 등 이른바 후진 사회주의 국가들은 다른 입장에 있습니다.<정리=진세근ㆍ오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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