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문화행정/유재식 문화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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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음력 정월대보름날(10일) 임진강 자유의 다리와 망배단 광장에서 다리밟기놀이등 통일을 기원하는 대규모 민속놀이 한마당을 펼치겠다는 문화부의 발상은 한가롭기 짝이 없다.
지금이 역사적으로 어떤 시점이고 또 문화부가 독립부처로 출범하게 된 시대적 요청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하면 한심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책상위에서 편한대로 생각하고 사람들을 동원이나 해보자는 행정편의주의와 전시행정은 도대체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전통문화를 계승ㆍ발전시키면서 민족분단으로 인한 남북간 이질화의 골을 메워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을 앞당기자는 취지는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이런 일일수록 관주도가 아니라 민간주도로,그것도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주는등 문화적 토양과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데 그쳐야 한다. 과거 숱한 비난의 대상이 됐던 시끌벅적한 관제행사나 치르라고 문화부를 독립 부처로 발족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굳이 소련과 동구권의 대변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라밖 세상은 그야말로 눈이 핑핑 돌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나라안 사정은 또다른 측면에서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정계개편으로 인한 정치권의 대혼란,수출부진과 물가폭등으로 대변되는 경제위기,툭하면 찌르고 죽이고 자살하는 인명경시풍조,이념과 계층간의 갈등….
물론 이 모든 현상이 정부,특히 문화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때 문화부,크게는 정부가 해야할 일은 자명해진다.
수백명을 동원,관제예술행사를 치르는데 정력과 예산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전도된 가치관을 확립하고 국민정서를 순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의 개발과 시행이 시급한 시점이다
특히 큰 의미에서 국민정서함양과 계도를 책임져야 할 문화부는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를 극복하고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시대정신(Zeitgeist)을 창출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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