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충동」의 충격(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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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삶의 의욕 심는 교육환경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좁은 문』이 발표됐을 때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 그 죽음에 공감한 나머지 한때 청소년들의 자살이 유행되다시피 했었다고 한다. 지금 40대 장년층 이상은 소설속의 미화된 사랑을 동경하거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살충동을 느꼈던 사춘기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시험지옥」에 빠져 사춘기마저 상실당한 청소년들은 그런 낭만적 탐미주의가 아닌 공부 스트레스에 짓눌려 대부분이 자살충동을 받는다니 충격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어제 중앙일보가 보도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팀의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중ㆍ고교생의 63%가량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으며 20%가량은 실제로 자살을 결심 또는 기도했었다고 한다.
이들의 거의 전부는 학교성적에 스트레스를 느끼고,성적과 진로문제로 고민하고 있어 학교성적으로 인한 부담감이 자살충동의 주요인으로 분석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이런 중압감에서 헤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음주ㆍ흡연ㆍ약물복용 등을 선택하거나 유혹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 또다른 사회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사춘기에 성장의 번민을 체험하고 탐미주의에 빠지기도 할 정도의 여유는 누릴 수 있었던 세대들도 학교공부와 입시라는 과정을 안거친 것은 아니다. 또 그때도 입시경쟁은 역시 치열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요즘 청소년들의 성적 스트레스가 강한 이유로는 우선 그들이 자라온 환경이 앞세대에 비해 풍요와 과보호속에서 고생과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며 조그마한 시련에도 쉽게 좌절하는 의지박약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산업사회로의 진전에 따른 핵가족화,가족 또는 친구 상호간에 심화되는 개인주의 때문에 자신의 고민을 의논할 만한 대상이 없어 철저한 고독에 빠지게 된다.
경쟁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다가도 그 꿈이 일단 깨지면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지력과 인내심보다는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여 도피주의에 자신을 내던져버리고 만다.
이들에게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과 열등감을 터놓고 하소연할 수 있는 가정분위기와 밀착된 가족관계가 가장 필요하다.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학비 대주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이 끝날 수 없다. 이 각박한 세태에서 부모란 보호자인 동시에 상담자이며 친구의 역할까지도 맡아줘야 할 것 같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에 대해 「공부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은 각자 자질이 다르고,누구든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다. 못하는 공부만 강요하지 말고 그가 가진 재능을 발굴하여 부추기고 키움으로써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과업은 학력경쟁에 의한 입시 위주의 현행 교육제도로는 불가능하다. 심신을 단련하고 자질을 계발하여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진로를 택하도록 도와주어 삶에 애착과 의욕을 갖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청소년 자살충동에 관한 조사결과에 대해 성인들이 충격을 느껴야 하며 그 충격으로부터 우리 2세를 이 엄청난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주는 노력이 행동으로 나와야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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