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왜? 서래마을 영아 유기 증거 나와도 수사 미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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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에서 일어난 영아 유기 사건 수사는 이제 프랑스로 공이 넘어갔다. 검찰은 30일 "사건 관련자들의 신문 기록, 국과수의 유전자 검사보고서 등 수사 자료를 법무부를 통해 프랑스 당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불어로 번역된 수사 기록은 외교부 영사과를 거쳐 프랑스로 넘겨졌다. 검찰은 죽은 아이들의 부모로 판명난 쿠르조 부부의 신병 확보를 위해 출석요구서도 첨부했다. 이들이 출석을 거부하면 프랑스 당국이 핵심 의혹들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핵심 신문 사항도 정리해 전달했다.

프랑스 법무부는 24일 공문을 통해 쿠르조 부부의 신문 기록과 영아들의 유전자 샘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 사법당국이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얼마큼 수사 의지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 그동안 프랑스에선 어떤 일이=쿠르조(40)가 서래마을의 자기 집 냉동고에서 영아를 발견해 신고한 것은 지난달 23일. 그는 경찰 조사를 받은 뒤 26일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이 사건은 연일 국내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지만 프랑스 언론에서는 이달 8일에야 비로소 첫 보도가 나갔다. 프랑스 경찰이 처음으로 움직인 것은 10일. 쿠르조 부부는 이날 오후 프랑스 중부도시 투르의 경찰서에 나가 2시간 남짓 조사를 받았다. 22일에는 부부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영아들의 부모가 아니다. 한국의 유전자검사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변호사도 "한국에선 이미 이들을 범죄자로 추정하고 조사를 진행했다. 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 영구 미제사건 우려=프랑스 측이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사건 해결에 소극적일 경우 이번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 있다. 우리 검찰이 프랑스 측에 보낸 출석요구서는 강제력이 없어 쿠르조 부부가 거부해도 어쩔 수 없다.

해외에 식민지를 많이 거느렸던 프랑스는 해외 영토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국민에 대해 '범죄의 속지주의'를 적용해 자국에서는 처벌하지 않는 게 관행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우리 측이 쿠르조 부부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는 한 쿠르조 부부는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수사 관계자는 "프랑스 측은 10일 쿠르조 부부에 대한 예비조사를 한 외에는 사실상 한 게 없다. 우리 측의 공식.비공식 수사 협조 요청에도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우리는 프랑스 정부가 쿠르조 부부를 한국으로 송환해 달라는 입장이지만 프랑스 측이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전망했다.

우리 형법상 영아 살해의 경우 공소시효는 7년. 하지만 범인이 고의로 해외에 도피한 것으로 판명되면 공소시효가 정지돼 쿠르조 부부가 한국에 입국하면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권근영 기자

◆ 형법상 속지주의=자국에서 발생한 범죄는 외국인.내국인을 불문하고 자국 법에 따라 처벌한다는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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