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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범죄 시효 악용 범칙금 미납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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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 봉천동 노점에서 옷을 파는 朴모(42.여)씨. 그는 지난 3년간 3만원짜리 경범죄 범칙금 고지서를 20여장이나 발부받았다. 노점상 단속 때마다 경찰이 '인근 소란'명목으로 뗀 것이다. 그러나 朴씨는 단 한 차례도 범칙금을 낸 적이 없다. 朴씨는 "안 내니까 즉심(즉결심판)에 나오라고 연락도 왔지만, 그냥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주변 상인들이 그러는데 3년만 버티면 아무 일 없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달 말 경범죄 범칙금 고지서 6백56장을 폐기할 계획이다. 모두 2000년 10월 중 발급한 것들로 3년의 시효가 끝나기 때문이다. 당시 한달간 이 경찰서가 적발한 경범죄 사범은 1천8백72명. 이 가운데 35%가 끝내 범칙금을 안 내고 버틴 것. 그래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경범죄 범칙금을 안내는 경우가 많다. 내지 않아도 강제할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공소시효인 3년이 지나면 기록조차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내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경범죄 범칙금 미납 건수는 약22만건. 전체 발급 건수(1백56만여건)의 14%다. 7명 중 1명꼴이다. 대부분 노상방뇨.쓰레기 투척.음주소란 등으로 3만~5만원짜리다.

범칙금이라도 교통위반의 경우는 상습 미납자에게 운전면허라도 정지시킬 수 있지만, 경범죄의 경우는 이렇다 할 제재 방법이 없다. '재판에 회부돼 거액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엄포성 통지서를 계속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범칙금 '딱지'를 받으면 10일 이내에 납부해야 한다. 이 기간을 넘기면 20일 이내에 20%의 가산금이 붙는다. 그때까지도 납부 안하면 즉심과 50%의 가산금이 더해진 범칙금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온다. 이마저 무시해버리면 경찰서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납부를 재촉하는 통지서가 온다. 그러다 3년이 지나면 현재로선 '끝'이다.

법적으론 즉심까지 회피한 미납자에 대해 경찰이 법원에 '불출석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례는 거의 없다. 법원이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지법 윤정근 판사는 "판사와 피고인이 대면하지 않는 상황의 판결로 인권을 침해할 수 있어 경찰의 청구를 가급적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에 따라 지난 5월 법원행정처에 불출석 재판을 활성화하고 즉심 거부자에 대한 강제 구인장 발부를 제도화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성실한 시민에겐 범칙금을 꼬박꼬박 받고, 3년간 버티는 상습범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황당한 처리를 피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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