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을 넘어라|90아시안게임 종목별 총 점검<18>|펜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80년대 한국 펜싱은 무(무)에서 유(유)를 창조하는 일대 도약의 시기였다.
지난56년 창설된 아시아펜싱연맹(AFC) 은 80년대 초반까지 유명무실, 아시아선수권대회 한번 개최하지 못했었다.
이에 따라 펜싱은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제외되는 등 아시아권에서도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88서울올림픽에서 중국이8위, 한국이 9위(남 단체 플러레)를 차지한 것이 아시아권의 현주소.
그렇긴 해도 한국은 중국과 서울아시안게임에서 8개의 금메달 중 4개씩을, 그리고 89년도 제1회 아시아선수권에서 10개중 4개씩을 나누어 갖는 호각지세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따라서 한국펜싱은 성장의 여세를 북경아시안게임까지 몰아붙여 종합우승의 감격을 누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합우승의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우선 86, 88 양대 제전을 치르고 난 후 노련한 대표선수들이 대거 은퇴, 혹은 노쇠화 했으나 신진유망주들이 나타나지 않아 원만한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86아시안게임 남자 플러레 단체·개인을 석권, 2관 왕에 올랐던 고낙춘(고낙춘·삼일방직) 이 올림픽직후 은퇴했다 지난해 다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노리며 재기의 검을 잡았으나 대표복귀가 가능할지는 미지수.
아시안게임 남자에페 2관 왕이었던 이일희(이일희·동양시멘트)역시 대표에서 탈락, 상비군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신예 이순이(이순이·강원도청)가 에페2관 왕에 오른 것을 비롯, 플러레단체 및 개인 은메달을 차지한 신성자(신성자·경남모직) 등이 눈부신 활약을 거듭, 여자종목의 강세를 지켰고 남자부에서도 유상주(유상주·한체대) 가 사브르단체 금·개인은메달, 김승표(김승표·지하철공사) 가 플러레단체 은·개인금메달을 따내는 등 남녀 종합 금5·은7개로 금5·은3·동4개인 중국보다 우세한 전과를 올렸다.
확실한 스타선수의 부재와 단신이라는 체격열세, 그리고 극히 엷은 저변인구라는 악재에도 불구, 이 같은 전과를 감안해 북경아시안게임에서의 종합우승을 노리는 것이다.
특히 한국선수들은 타고난 순발력과 정신력이 강인해 집중적인 훈련으로 단기간의 승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2선으로 밀려난 86, 88 양 대회에 출전한 베테랑들과 신예들이 대부분인 현 대표팀을 망라한 앞으로의 통합선발전을 통해「경험+패기」라는 이상적인 대표팀을 구성할 수 있어 기대가 큰 것이다.

<김인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