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사 노출시킨 강추위/신축 아파트촌의 동파사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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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7도까지 내려가는 4년 만의 강추위가 엄습하면서 서울시내 곳곳에서 수도관 동파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다.
내린 눈이 미처 녹지 않은 채 얼어붙은 도로가 터진 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로 아예 빙판으로 변해 차량통행이 막힌 곳도 여러곳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의아하게 하는 것은 준공된 지 2∼3년밖에 안되는 서울 상계ㆍ중계지역 대단위 아파트단지에서의 수도계량기 무더기 동파소동이다. 24일 중앙일보의 보도를 보면 이 일대에서만 이틀새 1천4백80건이나 무더기 동파사고가 나 주민들이 혹한속에 때아닌 식수ㆍ용수난을 겪고 있다 한다.
현대식 아파트의 경우 수도물 공급이 끊기면 식수는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조차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수도물이 끊긴 아파트 주민들은 동파를 면한 이웃에서 물을 빌려다 쓰느라 큰 불편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같이 이 지역에서 주로 동파사고가 난 이유는 복도식 아파트 북쪽 바깥 벽면의 계량기가 충분히 보온장치가 안된 채 설치돼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얼어 터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는 건설회사측이 공사비를 줄이려 보온재를 제대로 안쓴 때문이라는 지적이고 보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조리중 하나인 부실공사의 사례를 또 하나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쓰다.
현행 건축관련법규에는 수도계량기에 어떤 보온재를 어떻게 쓰라는 명시기준은 없다. 그러나 수도ㆍ전기ㆍ가스 등 생활의 기본설비는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안전하고 편리하도록 설계,시공되어야 한다. 서울의 경우 연중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이 영하 3.5도지만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심심찮게 있다. 기록상 최저기온은 영하 23.1도로 나타나 있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수도관은 동파의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수도설비는 평상시 추위에 동파같은 사고가 없도록 설계,시공되는 것이 원칙이고 이번같은 드문 추위때는 사전에 미리 대비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계ㆍ중계동의 경우 뒤늦게 주민들은 계량기 주위를 헌 옷가지로 둘러싸는등 소동을 벌이고 있다지만 이번 추위가 벌써 닷새째인 만큼 시당국이나 관리사무소측이 사전에 주민들에게 알리고 미리 방비했으면 무더기 급수중단사고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완벽을 기하지 못한 부실시공과 관리기관의 대비 부족,주민들의 방심이 부른 어이없는 해프닝이 수많은 주민들의 고통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수도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전기나 가스였다면 그것은 생활의 불편 정도가 아닌 큰 재난이 될 수도 있다.
재난과 만일의 비상상황에 대한 대비는 평상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부실공사로 확인된다면 시공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하고 재발이 없도록 보완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무더기로 터진 동파사고는 서울주변에 대량 아파트 건설을 앞두고 작지만 큰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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