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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기능공이 백만장자 골퍼 ″변신〃|미 젬브리스키의「인간승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미국 시니어 프로골프(50세 이상)에서 89년 시즌까지 96만2천9백18달러를 획득, 올 봄이면 백만장자가 될 것이 확실한 발트 젬브리스키(54)의 인생역정이 위대한 인간승리로 미국스포츠계에서 칭송 받고 있다.
왜소한 체격에 아래턱이 튀어나와 인상마저 독특한 젬브리스키는 프로스포츠스타 출신들이 판치는 시니어 프로골프 계에서 유일한 밑바닥 인생출신이다.
젬브리스키는 철근구조물설치 기능공 출신이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신축빌딩이란 으레50층이 넘는 빌딩들이고 젬브리스키는 평생을 빌딩공사장에서 보냈다.
점심시간엔 오르내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작업중인 초고층의 철근기둥에 허리를 묶고 샌드위치를 씹으며 싸구려위스키를 동료들과 나누어 마시던 젬브리스키는 5명의 동료가 추락사하는 사고를 겪었고 그 자신도 크레인이 넘어지면서 당겨진 와이어에 휘감겨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이 잘려나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골프에선 다행히 완전한 상태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그는 농담한다. 그가 다른 노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이 끝난 후 동료들과 어울려 단골술집으로 몰려가는 대신 골프연습장으로 직행, 밤늦도록 연습에 열중한다는 사실 뿐이다.
그는 뉴저지주 마와의 폴란드 이민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동네에서 가까운 퍼블릭코스에서 30년대 프로야구 홈런 왕 베이브루스의 캐디노릇을 하곤 하던 아버지가 얻어온 싸구려 골프채세트를 갖게된 것이 젬브리스키의 골프인생의 시작.
젬브리스키는 날마다 동네 모래땅에서 돌멩이 맞히기 스윙을 하거나 골프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로스트볼을 주워 동네를 가로지르는 철길 둑에 올라가 종탑이 높이 솟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맞히는 드라이버샷을 연습하는 개구장이 짓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젬브리스키는 낮에는 건축공사장에서, 그리고 밤에는 골프연습장에서 세월을 보냈다.
31세가 되던 지난 66년 뉴저지주 아마추어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그는 이때부터 좀더 많은 시간을 골프를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고 상금도 따지 못하는 순회경기에 빠져 본업을 소홀히 하다 아내 글로리아가 딸을 데리고 가출해 버림으로써 홀아비가 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은 젬브리스키는 67년 프로에 입문했고 거처를 뉴욕으로 옮겼으며 여유시간이 많은 철판 절단 공으로 직장마저 바꾸었다. 그러나 43세가 되던 78년 처음으로 US오픈대회출전권을 따냈으나 이 대회에서 그는 평생동안 잊지 못할 쓰라린 경험을 하게된다.
2라운드를 끝내고 라커룸에 들어선 그에게 한 동료선수가 고장이 나 열리지 않는 옷장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나는 라커보이가 아니다. 이 자식아!』모멸감에 흥분하여 소리친 후 라커룸을 뛰쳐나온 그였지만 3라운드 들어 부진을 거듭, 결과는 63명중 61위.
그러나 좌절을 모르는 그는 1년 내내 연습이 가능한 플로리다로 이사, 올란도골프장 청소원으로 취직, 수영장과 골프코스를 청소하는 한편 남몰래 훈련을 거듭했다.
47세가 되던 82년 그는 마침내 시니어골프대회로 목표를 바꾸고 즐기던 술·담배를 끊었다.
마침내 50세가 되던 85년 그는 미국골프협회(USGA)시니어 오픈에서 공동 4위를 마크한데 이어 88년엔 뉴포트컵·벤타지선수권 등 2개 대회를 석권, 27만4천4백11달러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이는 올 시즌에는 지난주 현재 상금랭킹 16위(4천7백 달러)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젬브리스키의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의 직업은 여전히 골프장청소원이고 순회경기도 중 내내 싸구려 여인숙에 묵는다.
「변한게 있다면 올란도골프장부근에 콘도를 하나 장만했고 예금통장에 12만 달러가 들어있다는 것 뿐이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린다.
『70층 꼭대기의 철근 위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20m정도의 퍼팅이 두려울리가 없다.』

<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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