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노협 정면대결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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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부가 지난20일 전노협세력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 노동계에 긴장감이 감돌고있는 가운데 전노협 (위원장 단병호·42)이 22일수원에서 창립대회를 기습강행해 정면대결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전노협은 87년이후 탄생된 「민주」 노조들의 전국적 구심체임을 자부하고 있는반면 정부측은 이들을 자유민주체제를 부정하는 급진노동세력으로 규정, 범정부적 공권력발동을 통해 와해시킨다는 방침아래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으로 제도권내의 한국노총을 비판하는 전노협의 출범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세력의 이원화를 뜻하며 전노협의 활동은 앞으로의 노사문제향방에 상당한 파장을 던질 전망이다.
전노협은 그러나 정부공세속에서의 대중성 확보를겨냥한 둣 지난해 준비과정에 비해 다소 온건한 노선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노협은 22일의 창립선언문과 강령·규약에서 종래 종종 사용하던 「노동해방」 이라는 용어를 한번도 쓰지않았고 12개항의 강령도 「44시간 노동으로 생활임금쟁취」 「노동3권 쟁취」「임금격차 철페」「산업재해방지」등의 내용으로 자극적표현을 피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 쟁취와 함께 국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제도적· 정책적 개혁추진을 목표로 내걸어 국민여론의 지지를 겨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노협은 22일 올 임금인상요구율을 23·3%로 발표하면서 『어려운 경제여건등을 감안, 요구율을 지난해보다 14% 낮췄다』 는 토를 달기도 했다.
전노협은 또 종래와 달리 학생운동출신등을 조직에서 제외시키고 현장노동자인 조합원들만으로 집행부를 구성했다.
전노협의 이같은 운신은이념적 공세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로도 해석되고 있는데 최근 CA (제헌의회파) 계열로 알려진 「노동해방문학」지는 이와관련,『전노협이 이념적 방향성을 상실하고 경제적 조합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노협은 노총보다 강한 투쟁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올 봄 임금투쟁의 성공적 수행을 통해 전노협의 토대를 강화시킨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어 정부와 재계는 전노협이 노사분규를 격화시키는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잔뜩 긴장하고 있다.
전노협은 최근 임투지침서를 발간한데 이어 2, 3월중 간부교육· 업종별 공동요구안 작성을 거쳐 4월에 업종·지역별 공동투쟁을 벌인다는 전략이다.
전노협이 수평적 회의기구였던「지역·업종별 노조전국회의」 보다 집행력과 통제력이 강한 조직체가 된다는 점도 정부측에 위기의식을 주고 있다.
전노협가입 조합원은 서울· 마산창원· 인천· 부산등14개 지역노조협의회와 민주출판·시설관리등 2개업종별 노조협의회의 6백개 노조19만명. 전교조· 전문기술노조연맹· 화물운송연맹은 참관단체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화이트칼러로 이루어진 병원·건설·대학· 언론· 사무금융노련등업종 노조는 미묘한 입장 차이로 가입을 보류하고 있다.
9O년대 노동운동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전노협의 앞날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핵심인물 상당수를 구속·수배한 정부는 가입노조 경리상황조사, 3자개입행위 정밀수사, 분규진압경찰대편성등 고강도 처방을 강행, 이들을 산업현장에서 「축출」 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사회민주화운동의 기수」를 자처하는 전노협과, 재야와 연계된 불순 계급투쟁세력으로 보는 정부사이의 물리적 충돌로 올해의 노사현장도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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