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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모델(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금 일본총리 가이후(해부)는 자민당 고모토(하본)파 소속이다. 이 파벌의 소속의원수는 겨우 30명에 지나지 않는다. 5개의 파벌중 가장 소수파쪽에서 총리를 탄생시킨 것이 바로 일본 자민당 정치의 절묘한 기술이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이루어진 자민당은 무려 10년을 두고 파벌연합체의 내분을 거듭해왔다. 그런 자민당이 일본의 정치안정에 기여해온 것은 몇가지 원칙을 철저히 존중해온 결과다.
첫째,완숙한 의원내각제의 원칙이다. 이 제도 아래서는 파벌 사이의 권력이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어떤 파벌이든 언젠가 정권이 돌아온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정치순환이 그만큼 빠르다는 얘기다.
둘째는 대타협의 원칙이다. 타협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생사결단하고 싸우지만 일단 타협이 이루어지면 언제 그랬냐 싶게 웃는 얼굴로 돌아간다.
셋째는 당직배분의 원칙이다. 파벌의 소속의원 실수에 비례해 당직을 각 파벌이 나누어갖는 파벌세력비형,각 파벌이 동수의 자리를 똑같이 나누어 갖는 파벌대표형,당선연차 등 형식적 자격요건을 갖추면 전원이 당직을 배분받는 전원참가형 등의 룰을 교묘하게 엮어 파벌의 균형을 유지한다.
당내 인사원칙도 세력균형,만장일치,연공서열이라는 세개의 이질적이고도 상호모순되는 원칙을 교직해 안분하고 있다. 가령 총재(총리)와 당간사장,경리부장이 각각 다른 파벌에서 차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정책을 누가 만들어내느냐 하는 원칙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상호침투」라는 말로 그것을 설명한다. 관청과 자민당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심화되어 정관혼합체에서 정책을 개발한다. 당내의 주요정책 결정도 파벌의 한계를 벗어나 정무조사회같은 공동기구가 떠맡는다.
그러나 자민당의 진면목은 야당을 다루는 솜씨에서 나타난다. 야당을 정부로부터 계속 배제시키면서도 체제내에 끌어안는 노력도 한다. 야당 지지층의 정치적 요구를 제때에 흡수해 야당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정,민주,공화 등 3당합당이 성공하려면 적어도 일본 자민당식 정치술을 터득해야 한다. 물론 국민의 지지를 전제로 하는 얘기다. 필경은 상당한 정치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합당이 곧 정치안정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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