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바다이야기'에 담배 피우며 속내 피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무현 대통령(얼굴)은 24일 저녁 열린우리당의 재선 의원 6명과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송영길.임종석.김영춘.안영근.정장선.오영식 의원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정책 실패로 비판 받는 '바다이야기'파문, 엇박자를 내는 당.청 관계,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대해 속내를 털어놓았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참석자들의 요구로 테이블에 고량주가 곁들여지면서 대화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노 대통령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의원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 했다"며 "평소 같으면 역정을 낼 대목에서도 편하게 웃고 받아넘기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전언을 토대로 만든 대화 내용.(*표는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 주)

◆'바다이야기'에 한숨

▶노 대통령="반노(反盧)만 다 모였네."(*참석자 중 일부가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한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해 농담조로 건넨 말.)

▶참석자A="레임덕이 오니까 대화가 됩니다."(*참석자들 모두 웃음.)

▶노 대통령=(바다이야기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담배를 꺼내물며)"도둑 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는다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도록 몰랐는지 부끄럽다. 검찰이 수사를 잘하지 않겠느냐.(야당의 '권력형 게이트'공세에 대해선)청와대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평소 잘 피우지 않던 담배를 여러 대 피웠는데 한 참석자는 "답답한 심경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

◆당.청 관계

▶노 대통령="열린우리당에서 비판을 받은 게 제일 아픈 일이다. 하지만 당이 정권을 잡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비판을)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탈당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도 당이 유지돼야 한다.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양대 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

▶참석자B="당.청 간에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누가 됐든지 정무수석이나 정무장관 등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노 대통령="그럼 정무수석이라도 한번 만들어 보지요."(*한 참석자는 "정무수석을 부활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당.청 관계를 잘해보자는 취지로 가볍게 의원들의 주문을 받아넘긴 것"이라고 설명.)

▶참석자C="교육부총리 임명이 늦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언론과 정치권의 눈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참 힘들다."

◆한.미 FTA

▶노 대통령="한.미 FTA가 원만하게 체결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도와 달라. 만일 우리가 미국하고 FTA를 체결하지 않은 채 미국이 일본 또는 중국과 FTA를 체결하려 했다면 '왜 우리는 그것도 못하느냐' '정부가 무능하다'는 비판이 나왔을 것이다. 반드시 이뤄야 할 사안이다."

▶참석자들="적극 돕겠다."

◆내년 대선 관련

▶참석자D="정치권에서 (노 대통령이 말한)'외부 선장론'이 화제가 됐었다…."

▶노 대통령="모든 걸 떠나 당이 잘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외부에서 사람이 오지 않겠느냐. 지금 당 사정이 좀 안 좋은데 그걸 채워야 할 몫은 여러분의 몫이고,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참석자E="탈당은 안 한다고 했는데…."

▶노 대통령="퇴임하더라도 내 나이가 젊은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당에 끝까지 남아 있고 싶다. 그러나 총선.대선에 대통령이 걸림돌이 된다면…."(*한 참석자는 "선거에서 걸림돌이 된다면 '나를 딛고 가라'는 의미로 들렸다"고 설명했다.)

신용호.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