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러시아어 되살리기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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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국 버몬트주에서 망명생활을 하고있는 소련작가 솔제니친이 이색적으로 모국어인 러시아어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어 소련 내 지식인들로부터도 환영받고 있다.
사실 최근의 러시아어는 신조외래어와 관료주의적 특수용어들로 인해 혼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게 러시아어학자들의 공통된 우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의 뿌리를 찾는 노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페레스트로이카와 더불어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였던 터라 솔제니친이 올해부터 매달「러시아어」라는 학술집회지에 기고할「소련고대언어와 방언소사전」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러시아어 중엔「비즈니스맨」이나「매니저」와 같은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토착 말이 없어「biznesman」이나「menedzher」로 음역해 쓰고있고「주말」이란 단어도「viken-d」로 쓰고있는 형편이다.
솔제니친의 모국어에 대한 애착은 그가 집필중인『붉은 수레바퀴』에서도 잘 나타난다. 장편역사서사시인이 작품을 쓰면서 그는 소련의 고유어와 방언들을 가급적 많이 발굴,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막내아들 스테판으로 하여금 직접 타이프를 치게 하는 방법으로 미국에서 소홀해지기 쉬운 모국어 공부를 시키고 있다.
솔제니친 전에도 그간 주기적으로 러시아어의 퇴보를 우려하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60년대 말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는『리터라투즈나야 가제타』라는 잡지에 러시아어가 관료주의적 슬랭으로 저질화 돼 가고 있다는 글을 실었으며 지난해 7월에도『리터라투즈나야 초시야』지가 언어를 지키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솔제니친이 러시아어의 뿌리를 연구한 결과를 매달 기고하는데 대해 언어학자는 물론 작가들까지 열렬한 환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솔제니친은『러시아어는 접두사와 접미사가 풍부해 얼마든지 신조어를 만들 수 있는 창조적 언어』 라고 말하고 앞으로 계속 모국어의 뿌리를 찾아 국적없는 외래어를 러시아어에서 추방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로 인해 영어가 풍부해졌고 괴테와 실러로 인해 독일어의 영역이 지금의 수준으로 넓어진 것을 생각할 때 솔제니친의 이 같은 모국어 사랑은 분명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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