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율로 하는 「자율장학」(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4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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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위ㆍ교장 생색내기 치중/백일장ㆍ미술대회 철따른 전시행사 수업만 축내
서울 강북의 N국교 3학년5반 정모교사(39)는 지난해 10월 지구자율장학협력회가 주관하는 국어연구수업 공개를 마치고 크게 실망했다.
Y교육구청 3지구내 10개 국민학교 3학년 주임교사ㆍ교감ㆍ교장과 교육구청ㆍ시교위 장학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한 1시간 수업공개가 전시행정에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복도까지 메운 참관교사등이 수업공개 후 질문없는 무관심에다 애써 작성한 교재연구서도 연례행사보고서쯤으로 그친 채 활용방안이 뒤따르지 않는 것을 알고서였다.
지구내 국민학교에서 윤번제로 하는 수업공개를 위해 『잘해내야합니다』라는 교장의 명이 떨어진 것은 그해 7월 정교사는 여름방학도 없이 교재연구에 시간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2학기 들어 수업공개가 다가오자 국어수업에 매달리는 바람에 학생들도 진이 빠지고 다른 과목에도 적지 않은 수업결손을 가져왔다.
교내 연구수업발표도 아닌 교육구청관내 지구 수업공개인 만큼 학교의 명예나 자신의 능력평가가 달려있어 「잘해보여야 하는」 부담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교장ㆍ교감이 하루 한번씩 수업공개준비를 어떻게 하나하고 교실에 들러 직접 지켜보며 이런 저런 지적을 하니 수업공개 1개월을 앞두곤 내내 부담감에 눌려 숨이 막혔습니다.』
정교사는 『그래서 수업공개의 수업진행도 교육과정 이론대로 맞춰 시나리오를 작성해 발표력유도ㆍ질문받기ㆍ토의에 이은 총정리 순서로 예행연습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준비끝에 실시한 수업공개가 「보여주기 위한」 하루 반짝 행사로 끝나 준비기간중의 시간 낭비는 물론 예산낭비에다 잘못하면 해당교사나 교장ㆍ교감까지도 무능으로 찍히는 구시대적 관료행정의 병폐로 꼽히고 있다.
지구자율장학협력회에서 하는 백일장ㆍ미술실기대회ㆍ음악경연대회ㆍ반공행사 등 예체능 활동도 마찬가지.
대구시 D국교 5학년4반 김모교사(35ㆍ여)는 교육적 효과보다 학교별 생색내기식의 이같은 행사를 왜 해오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백일장ㆍ미술실기대회ㆍ음악경연대회ㆍ웅변대회에는 아예 정해진 학생들만 학교대표로 나갑니다. 그러나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과 우월을 가리는 비교육적 현상이 쌓여요.』
김교사는 『그것도 대회가 토요일 방과 후나 일요일에 실시되지 않아 수업결손이 많고 인솔교사의 반은 온종일 자습이 되고만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지구자율장학협력회가 운영된 것은 지난 73년부터. 교육구청(교육청)별로 10개 안팎의 학교를 묶어 지구를 설정해 상호 우수교육사례를 발표,교사의 자기연찬과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출발했다.
국교와 중학교는 지난해까지 시ㆍ도교위에서 주관하다 올부터 교육구청(교육청)으로 넘겨졌으나 고교는 시ㆍ도교위에서 주관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간에 교육현안을 풀기 위한 상호 관계개선이 주된 목표였다.
그러나 실시당시부터 시ㆍ도교위와 교육구청(교육청)에서 담당 장학사를 두어 어느 학교에서는 수업공개를 하고 어느 학교에서는 미술실기대회를 열라고 하는 등 지시일변도의 행정으로 치러졌다.
교육구청ㆍ교육청별로 실적 위주에 치중된 이 제도는 최근들어 실효성에 대한 교사들의 비판이 높아지면서 마지못해 유지되는 상태. 서울의 경우 9개교육구청 관내 지구자율장학협력회는 국교 49개지구,중학교 36개지구,고교 16개지구.
N교육구청 관내 6지구 자율장학협력회가 지난해 10월25일 지구내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율장학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업연구공개및 학예활동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업연구공개의 경우 수업연구공개보다 전문가를 초빙해 교수ㆍ학습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연수로 하는 것이 낫다가 80.5%였다. 이와함께 수업공개연구및 참관은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8.8%),행정적 명령이므로 할 수 없이 한다(4.4%)는 등 부정적 견해를 나타낸 반면 수업공개가 필요하다는 0.1%에 불과했다.
실시시기도 현행 수업시간을 이용하기 보다 시사성이나 계절을 고려해 방과 후ㆍ일요일에 해야한다(77.0%)고 응답해 수업결손이 큰 것이 입증됐다.
따라서 지구자율장학협력회의 학교별 윤번제 수업공개의 경우 해당교사의 준비노력등에 비해 참관교사의 무관심ㆍ형식적 참여ㆍ운영 등으로 결국 「부담」만 안겨주고 있다.
특히 학교별로 경쟁심만 불러일으켜 본래의 목적과는 비뚤어지게 운영되는 사례가 많아 교육구청장ㆍ장학사ㆍ교장 등을 위한 얼굴내기가 아니냐는 교사들의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서울 D국교 이모교감(51)은 『현재 학교별로도 연구수업발표ㆍ장학지도ㆍ미술실기 등 예체능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지구자율장학협력회의 수업공개ㆍ예체능대회를 여는 것은 「옥상옥」으로 시간과 예산낭비』라고 했다.
수업공개ㆍ행사보다 강당ㆍ운동기구 빌려쓰기 등 자료교환과 교과협의 형태로 탈바꿈 되지 못하고 17년간 겉치레 행정쪽에 굳어진 지구자율장학협력회ㆍ얼굴만 「자율」을 붙인다고 해서 자율장학ㆍ자율행정이 될 수 있느냐는 해묵은 문제앞에 새롭게 마주쳤다.<탁경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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