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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민간인 2명 태밀림서 ″45년 항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종전 알고도 숨어산 속사정>
종전45년만에 끝까지 항복(?)을 선언하지 않고 있던 2명의 일본인이 지난10일 귀국했다.
태국·말레이시아 국경지역 정글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을 알고도「전쟁」을 계속해온 다나카 기요아키(전중청명·78) ,하시모토 시게유키(교본혜지·71)씨가 그 장본인이다.
두 사람은 일본에 남겨둔 가족·친척과 정부의 끈질긴 교섭에도 불구, 계속 버텨오다 지난달 2일 그들이 소속한 말레이시아 공산당이 태국국군에 투항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귀환에 응했다.
이들은 지난 72년 1월 괌의 한 무인도에서 나타나 화제가 됐던 요코이(횡정장일 ) 전육군 오장과 74년3월 필리핀 루방도에서 귀국한 오노다(소야전) 전육군 소위보다. 더 끈질긴 고집을 부린 셈이다.
이들은 왜 종전후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고 밀림 속에서「전쟁」을 계속해 왔을까.
89년5월 이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태국국경으로 이들을 찾은 다나카씨의 조카 -다나카히로이치 (전중홍일) 씨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공산당(CPM)과 일본정부의 사이에 의견차이가 있었던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CPM은 2명을 오노다소위처럼「제2차대전의영웅」으로 취급해 달라고 주장해 왔지만 일본정부는 그들이 구 일본군인이 아니고 오노다나 요코이처럼 전쟁이 끝난 것을 몰랐던게 아니므로 전쟁영웅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CPM은 이들의 소속이 좌익게릴라였지만 그들의 저항목적은 철저한 반연합군·반영이었으므로 일본 제국을 위해 싸운 점에 구 일본군인과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항전의식은 철저한 충군 애국의 제국군인 정신에서 비롯했고 언젠가는 대동아공영권이 실현될 것이라고 굳게 믿은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운명은 기구했다. 다나카씨와 하시모토씨가 말레이시아에 가게된 것은 함께 일본계기업 일남제철 (케다주 순게파타니 지역) 에 입사한 때문이다.
이들은 각기 33세, 26세였던 44년8월 고베 (신호)에서 같이 배를 탄 50명중에 끼였다. 일남제철의 전신은 무역회사 일난공사였고 43년 군에 징발되면서 법인으로 전환, 제철회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에 소속된 현지인은 약1백명.
이들이 부임한지 1년도 못된 다음해 8월15일 전쟁은 끝났다. 이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미 말레이시아 공산당에 스카우트된 후였다. 게릴라들은「일본은 전쟁에 졌다. 일본은 신형폭탄 (원폭) 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와 함께 싸우자. 돈도 벌수 있고 여자도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당시 사정을 전했다.
처음 게릴라에 가담한 일본인은 8∼9명 정도. 이들은 군에서 받은 일본제 구식총 50정과 함께 정글로 뛰어들었다.
말레이시아 공산당은 원래 30년에 성립, 전시중에는 말레이 항일군으로 활약하다가 전후에는 항영운동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들 중 다나카씨는 수류탄이나 총등 병기수리·제조전문가였고 하시모토씨는 의학이나 약에 대한 지식이 있어 군의로서 크게 활약했다.
일본인중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특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이들의 하루일과는 엄격한 규율속에서 조금도 쉴틈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하루 일과표를 보면▲6시10분=기상 ▲6시30분=말레이시아「인민의 소리」라디오 방송청취▲7시30분=점호·체조·업무 분담 ▲8시=아침식사▲9시=업무시작▲12시=점심식사· 휴식▲13시30분=오후일과 시작▲ 16시30분=수영▲ 17시=자유시간▲19시45분=야간학습 (영어·태국어·수학·기타) ▲22시=취침등으로 되어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단파라디오를 통해 일본소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점이었다.
이들은 일본 씨름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쓰가루 해협에 지하터널이 뚫린다는 사실등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투항해 귀환한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늘 말해 왔으며 비밀누설을 두려워하는 게릴라지도부의 감시를 받아 왔다고 한다. 종전 45년이 지난 후 귀국한 이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일본 정부당국은 고심하는 눈치다.
이들중 하시모토씨는 군 입대경력이 없고 다나카씨는 12년재직 경험을 채우지 못한 관계로 은급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들이 45년만에 접한 문명사회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일본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동경=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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