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노동자 설득하다 끝내 흥분/고르바초프 리투아니아 방문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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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화내지 말라고 타이르는 아내에 “입닥쳐”/“모두 독립생각하면 대가 치러야”위협도
고르바초프서기장이 리투아니아방문에서 약속한 이른바 「새로운 연방형태」의 구체적 내용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현지에선 물론 서방측에서도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서방측 전문가들은 이번 고르바초프의 약속이 소련 연방제와 하나의공산당이라는 기본골격을 유지하면서 그 테두리안에서 각민족의 자립을 최대한 보장하고 각민족의 자결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또 이를 위해 각공화국과 그 당의 자주ㆍ독립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강령적 성격의 문서를 이달 하순 열릴 예정인 당중앙위에서 검토하도록 할 것으로 보여 이번 당중앙위 총회는 기로에 선 「사회주의 소련」의 앞날을 결정짓는 중요한 회의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말하는 새로운 「연방체」가 지금의 소연방과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과연 각 공화국의 경제적 독립뿐 아니라 정치적 독립까지 완전 보장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회의적 시각이 많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을 방문중인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은 주민들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고조된 민족주의열기를 해소시키려했으나 현지주민들의 거센 독립요구발언에 흥분해 오히려 자제력을 상실하는등 에피소드가 속출.
방문 첫날인 11일 아침 자동차 엔진공장을 직접 방문한 고르바초프는 「리투아니아의 완전독립」이란 구호가 쓰인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을 만나자 『누가 이런 구호를 쓰게 했는가』라고 질문. 이에 대해 그들은 『누구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스스로 썼다』고 대답.
고르바초프가 다시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서 근무하는가. 그리고 「완전독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자 한 노동자가『완전독립이란 1920년대에 레닌이 리투아니아의 주권을 인정한 것처럼 되는 것이다.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할 권한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응수.
고르바초프는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나도 물론 리투아니아가 독립국가로서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공화국은 리투아니아에 금속ㆍ철광석ㆍ석유 등을 싼값에 공급,리투아니아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고 설득하려했으나 고르바초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노동자는 『1940년대 스탈린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리투아니아인들이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당신이 아는가』라며 고르바초프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말을 들은 고르바초프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나는 더이상 이 사람과 얘기할 수 없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모두 이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제 더이상 할말이 없다』고 대화를 중단.
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부인 라이사여사가 흥분한 고르바초프를 진정시키려 하자 고르바초프는 『입 닥쳐』라고 소리치며 서둘러 그자리를 빠져나갔다.<외신 종합>
○…일본 외무성도 이례적으로 고르바초프서기장의 리투아니아공화국 방문에 깊은 관심을 표명.
외무성의 한 관리는 12일 『고르바초프의장에게 민족문제는 최대 현안이며 이번 방문은 그의 운명을 건 행동이다. 일본도 그결과를 주목한다』고 말해 리투아니아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견해를 피력.
일본 외무성이 이처럼 소련의 외교문제가 아닌 내정문제에 대해 발언한 것은 이례적인 일.
한 소식통은 소련의 민족문제가 동구변혁과 깊이 관련돼 있을뿐 아니라 동서관계를 포함한 금후 세계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칠 사태발전으로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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