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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자회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이젠하워와 케네디의 두 행정부를 계속해서 취재해 온 백악관 출입기자들이라면 대통령의 기자회견스타일에 있어 케네디가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는지 잘 알고 있다.
아이젠하워 때 있었던 유일한 변혁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처음으로 TV 앞에서 가졌다는 것인데,그것은 녹화를 한 후 새로 편집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생방송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케네디의 참모들은 어느 행정부보다 대통령에 관한 기사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한 사람은 바로 케네디 자신이었다.
케네디는 판단이 빠르고 발음이 정확한 데다가 후리후리한 키에 미남이고 매력적이기도 했다. 그가 TV생방송을 즐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 비해 존슨은 개인적인 매력은 있으나 투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속적인 인상의 인물이었다. 그는 케네디에 대한 국민들의 신선한 기억에 맞서기 보다는 차라리 자기 스타일대로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존슨은 텍사스의 LBJ 목장 건초더미 옆에서 기자회견을 갖거나,아니면 기자들의 부인과 자녀들까지 초청해서 참관시키는등 다소 즉흥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기자회견을 꺼려한 닉슨은 미리 성명 내용을 준비하여 전국에 TV로 중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 굳이 기자들의 짖궂은 질문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배우 출신답게 TV에 「출연」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즐겨한 레이건은 역대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에 속한다.
그러나 레이건은 기자회견에 앞서 참모들과 적어도 서너차례 예행연습을 갖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고도 실수와 실언이 잦았지만 국민들은 따뜻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의 친근감 넘치는 제스처와 풍부한 유머가 그 약점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대부분 생방송으로 중계되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사전에 서면으로 받아 조정하고 답변도 미리 준비하는 게 관례로 돼 있다. 박정희 시대도 그랬고,전두환 시대도 그랬다. 그런데 10일 노태우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은 그런 사전조정 없이 이루어졌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 미리 짜 맞춘 기자회견은 어느 의미에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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