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7년째 쉼 없는 '사랑의 가위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가위손사랑회' 회원들이 22일 점심시간에 모여 다음 봉사활동 계획을 논의한 뒤 포즈를 취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중장비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신영근(36)씨는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면 이발 도구를 챙겨 집을 나선다. 거제도 장승포의 정신지체장애우 복지시설인 애강원에서 장애우들의 머리를 깎아주기 위해서다.

삼성중공업 내 이발 봉사동아리인 '가위손사랑회' 회원인 그는 올해로 꼬박 10년째 자원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신씨는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10명이 넘는 장애우들의 머리를 깎다 보면 손이 아프고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1980년부터 27년간 거제도 지역에서 이발 봉사를 해온 가위손사랑회는 그동안 500번이 넘는 봉사활동을 했다. 한 달에 한번 애강원을 찾아 70여명의 원생들 머리를 다듬어주고, 일년에 네댓차례 노인 등 지역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이발을 해준다. 회원들의 장기를 살려 발 마사지와 마술, 연극 공연 등의 봉사를 하기도 한다.

이 동아리는 이달 초 지병으로 작고한 퇴직사우 김종성(63)씨가 만들었다. 이발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80년 입사한 그는 우연히 애강원의 존재를 알고 부인과 함께 장애우들의 머리를 깎아주기 시작했다. 김씨 부부의 활동을 알게 된 이발병 출신의 동료들이 하나둘 가세하면서 95년 정식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가위손사랑회에는 현재 20~30대 나이의 삼성중공업 직원 10명과 거제지역 이.미용사 20명 등 30명이 가입돼 있다. 애강원 등에 봉사활동을 나갈 땐 이들 중 예닐곱명이 교대로 참여한다. 회사 측은 이발 도구 구입비와 교통비 등을 경비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동아리 활동을 돕고 있다.

봉사 대상이 주로 정신지체 장애우들이다보니 난감한 상황도 적지 않다. 이발 뒤 목욕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문 밖으로 뛰쳐나가 20대 처녀 미용사들을 흔비백산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가위로 제 머리를 깎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초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회원도 있지만, 차츰 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알게 되면서 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 동아리 김원영(36) 회장은 "봉사하는 날이면 장애우들이 문 밖에 모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회원이 왜 안왔느냐며 묻기도 한다"며 "활동을 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나눠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