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대통령 공천한 죄 사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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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상천(朴相千)대표가 '17대 총선 이후 책임총리제 도입'이란 화두를 던졌다. 15일 열린 국회 대표연설에서다. 朴대표는 책임총리제가 "개헌을 하지 않고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이룰 수 있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득권을 인정하면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란 점을 강조했다.

분권형 대통령제란 외교.국방.통일 등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內治)는 국무총리가 나눠서 맡는 제도다.

따라서 현행의 국무총리 제도를 활용하면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분산할 수 있다는 게 朴대표의 주장이다.

朴대표가 17대 총선 이후 '책임총리제'이행을 들고나온 데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다. 우선 盧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치고나온 '재신임 국민투표'정국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육책의 측면이 있다. 민주당은 재신임을 둘러싸고 盧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직접 대결하는 양자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기미가 보이자 불안해하고 있다.

盧대통령과 통합신당을 주축으로 친노(親노무현)세력들이 결집하면서 진보 대 보수의 대결 국면으로 넘어가민주당은 설 땅을 잃게 될 우려가 있다. 한 당직자는 "양자 구도가 굳어지면 민주당은 한나라당 2중대격이나 군소정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경우 민주당 지지층, 특히 호남표를 놓고 벌이고 있는 신당과의 줄다리기에 불리해질 수도 있다.

책임총리제에는 내각제 요소가 다분히 녹아 있다. 盧대통령의 탈당 이후 마땅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며 동요하는 호남 민심을 붙잡아둘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朴대표는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17대 국회 의석 분포가 1, 2당이 비슷하면 대통령이 2당에서 총리를 지명할 수도 있다"며 "우리당 등 나머지 당이 내년 총선 결과 연합해 과반수가 될 수 있으면 그 당에서 총리를 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재신임 국민투표=위헌'이라며 거부 목소리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그는 ▶국민투표는 정략이 개재된 쿠데타적 발상이며▶재신임을 받는다 해도 국정 혼란의 근본 원인이 해소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朴대표는 연설에서 盧대통령의 탈당과 통합신당 창당을 비판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배신''폭거'같은 격한 말을 써가며 민주당 지지자들의 감성에 호소했다. "배신과 분열의 대통령을 공천한 죄를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린다"고도 했다. 그는 신당을 겨냥해 "민주당의 중도개혁을 지지하면서도 마지못해 탈당파를 따라간 의원들에게도 재입당의 문호를 개방하겠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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